아래 기사는 참세상(www.newscham.net)에서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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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고집, 왜곡된 신념체계 드러낸 기자회견
[기자의눈]
노무현 대통령은 왜 공격받는지 정말 모르나
2006년08월10일 12시54분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연합뉴스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한미FTA 등 두 가지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풀어놓았다.
한마디로 오만과 고집, 왜곡된 신념체계가 만들어낸 우울한 해프닝이다. 무엇보다도 2차협상을 전후한 시기 한미FTA 추진에 대한
국민적 반대 여론이 커진 점을 의식한 빛이 역력하다. 3차협상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밀리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 최고와 해보자는 노무현의 신념
'개방이 진행중인데 왜 굳이 FTA를 체결하려는가' 라는 질문에 개방을 주도하는 것이 '우리'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명백한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집권과 함께 동북아경제중심을 제기했고, WTO 다자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경제자유구역을 추진했고, 교육과
의료의 개방, 공공부문 민영화, 기업하기좋은나라, 선진노사관계 구축 등 공세적인 개방정책을 펼쳤다. 노무현정권이 개방에 스스로 머뭇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개방이냐 쇄국이냐 라는 변변찮은 논리로 개방론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개방이 대세이고 따라서 이제는
주도하는 게 대세라고,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변했다. 경쟁 무대가 넓어지고 경쟁수준이 높아진다, 경쟁의 양질적 확대가 이뤄진다, 경쟁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장이 미국이다, 세계 최고와 해보자 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어느 만큼 먹힐 지는 지켜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과 무관하게, 논리적 측면과 관계없이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지
모른다. 한미FTA 추진세력의 준동이 결코 만만치 않은 까닭에, 미국과 높은 수준의 FTA는 안 된다거나 졸속추진은 안 된다거나 나쁜FTA는 안
된다는 차원의 저항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추진세력의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깨뜨려낼 수 있을지 섣불리 장담키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신념을
표출하는 배경, 즉 학습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쟁과 효율'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민중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코드가 되었다.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시장 장악과, 더 많은 효율과, 더 많은 이윤을 절대선으로 간주한다. 이 자본의 흐름을 대세로 받아들이는 순간 '개방'은 필연으로
이해된다. 노무현정권은 출발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받아들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굳건한 바탕 위에서 외자의 자유로운 이동과 한국
독점자본의 시장 환경 개선 요구를 수용해왔다.
민중과 학습 기회 갖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개방'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는 학습할 기회를 사실상 갖지 못했다. 국정과제 어느 하나 개방정책을 거스르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개방을 순리와 대세로 받아들였으며, 이에 반발하고 반대하고 거스르는 흐름이 발생하면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로 몰아부치는 일을
반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방 → 더높은 수준의 경쟁 → 세계 최고인 미국과 경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따라서
한미FTA도 '불가피'나 '압력'이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이 정확히 맞다. 최근 중국이 먼저 한중FTA 체결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미국이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는 정황이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안건 자료를 통해 밝혀지고 있기는 하나, 미국의 태도와 관계없이 노무현 대통령은 개방의 길을 걸어왔고
한미FTA를 선택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방과 관련해서 든 두 가지 사례, 즉 칠레와 멕시코 사례도 개방 논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칠레와
관련, 한칠레FTA 체결 전에 비준이 지체되는 동안 시장점유율이 떨어졌는데 비준이 되고 나니 수출품 비중이 올라갔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런데
한칠레FTA 한다고 한국 농업 다 망가뜨린 점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농민 계급을 강제로 재편하고, 농촌공동체 붕괴 과정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겪어온 고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멕시코 관련, 일-멕시코FTA 이야기를 하며 멕시코가 느긋하게 배짱을 부린다며 경쟁에 늦게 나선 것이 안타깝다는 뉘앙스를
펼쳐보인다. 나프타 이후 몰락한 멕시코 민중의 삶이나 민영화의 후과나 노동자가 겪는 실업과 고용불안 따위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쟁에, 무역과 투자를 통한 국익, 즉 독점자본의 이익과 관련한 관심이 노무현 대통령의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시장 크고 기술 높은 나라와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인식, 세계 최고인 미국과 해야 한다는 인식은 한국 독점자본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된 것이다. 학습이 신념으로, 신념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건 수순이라 할텐데, 이게 아니면 무엇이 있느냐는 식의 특유의
직설, 비유, 반어법을 동반한 승부사적 기질이 어울려 어처구니없는 한미FTA 주체적 대세론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신념체계 왜곡 부채질하는 승부사적 기질
'왜 한미FTA를 서둘러 체결하려느냐, 왜 한미FTA를 먼저 체결하려느냐'는 질문에는 일본과 중국과 비교하면서 FTA마저 일본을
뒤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더불어 중국을 뒤따라 갈거냐 라고 되물었다. 농업 예를 들면서 한미FTA 통해 경쟁력이 있는지 실전에서 도전하고
그 다음 중국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FTA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다시 엿보이는 대목이다. FTA는 해야 하고, 미국에
필이 꽂혔고, 따라서 미국과의 FTA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면 다른 나라와는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알려진 대로 현재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이스라엘, 나프타, 요르단, 칠레, 싱가폴, 중미5개국, 호주 등 15개국으로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스위스는 농업과 관련해서 협상을 중단했고,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도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과 FTA를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는 나라가 과거 멕시코 살리나스 정권 외에 사실상 어디 있을까.
다자협상이 정체되면서 FTA가 대세라고는 하나 지금까지 체결된 FTA 200여 개 중 상품과 서비스의 90% 수준을 개방하는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경우는 20여 개가 채 안 된다. 그만큼 손익과 호혜적인 조건을 두루 따진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미국과 FTA를
맺더라도 대부분이 손해라는 예측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개방 논리를 내세워 밀어붙이고 보자는 식이다.
이날 기자회견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찬반은 얼마든지 좋은데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 그 사실이 공정해야 되고, 그걸 토대로
해서 얘기해야 하는데, 정치적 선동 방식으로의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과 예측의 논리를 갖고 논쟁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미국과 FTA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다는 이야기는 비뚤어진 신념체계가 만들어낸 맹신이다. 더군다나 한칠레, 한미FTA를 통해
농업면역력과 경쟁력을 키우고 한중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은 코미디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기자회견 내용 어디에도 실질적 내용과 예측의 논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미FTA에 대한 신념은 미국 의회의 신속협상권을 고려해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합의 안되면 시간 때문에
중요한 내용을 포기하지 않겠다고는 하지만 빠를수록 좋다는 강조에 비하면 이는 수사적인 멘트에 불과해 보인다. 준비가 부족하고 졸속이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수준에서 비교, 확인된 바 있다. 그럼에도 2003년부터 관계장관회의를 하고, 2004년에 대외경제위원회를 설치하고, 캐나다와
사전 액션도 취하는 등 전략을 구사해왔고, 한칠레 때 향후를 내다보며 FTA지원특별법이라는 선대책도 만들어 놓았는데 왜 자꾸 따지냐는 답변이다.
준비를 다 하는데 안 됐다 하고 선대책 말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이고 수사라며 농업운동 하는 사람들한테 '사실을 보라'고 호통을 친다.
대관절 '합리'가 무엇이더냐
노무현대통령의 호통은 언론과 국회와 민주 진보세력에게로 이어진다. 언론은 사실이 아닌 것을 침소봉대 한다며 꾸짖고, 국회는 연초부터
국회에서 토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국회가 협상하냐며 질책하고, 진보에게는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대화와 타협도 하라며 충고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미에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며 '아픔'을 호소한다. 더불어 한국의 진보에 이의를 제기한다며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진보든 보수든 다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없다"고 한다. 직설화법, 정공법으로 한미FTA 추진 합리화에 못을 박는다. 참
멋진 말처럼 보인다.
한가지만 확인하고 가야겠다. 대관절 합리적인 게 무어냐는 것이다. 주지하듯 노무현 대통령이 학습한 '합리'는 '개방'이다.
독점자본이 요구하는 것을 순탄하게 처리하겠다는 소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합리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년간 민중이 제기한 이러저러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로부터 공격받는 이유를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본 적 있는가. 우리 사회에 뭔가를
기여하는 것은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합리인가, 누구를 위한 합리인가 여부일진데 어찌 그걸 모르는가.
유영주 기자 yyj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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