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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국 파격제안 마다하고 왜 미국을 택했나
중국 밀어낸 한미 FTA
2006-08-10 오전 07:24:59
한미 FTA 추진과정 3대 의문점
지난해 9월12일 열린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이하 대경위) 회의 안건자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상황과 관련해 여러가지 새로운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왜 우리 정부가 중국의 파격적인 한-중 자유무역협정 제안을 거부하고, 미국 쪽에 4대 선결조건을 양보하면서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서둘렀는지가 가장 핵심이다.
[의문점1] 왜 중국의 한-중 자유무역협정 제안을 거부하고 한-미 협정을 서둘렀나
대경위 자료는 한-일, 한-미 협정과 비교했을 때 한-중 협정의 국내총생산(GDP) 증대 효과가 가장 크다고 밝히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중국이 지난해 상반기 이후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우리 정부 안에서도 ‘한-중 협정 조기추진론’이 제기됐다고
이 자료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한-중 협정 조기추진론’과 ‘한-미 협정 후 한-중 협정 추진론’ 중 후자를
선택한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중 협정이 체결될 경우 농산물 분야의 피해가 너무 광범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중 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중 협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유무역협정이 가능한 거대경제권은 미국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샤오준 상무부 차관보가 ‘(농산물 문제에 대한) 유연처리 가능’ 발언을 한 것 외에도 장윈링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장이 2005년 5월 “점진적 개방과 민감품목 제외 등의 방식으로 농업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등 농산물 분야에서 대폭
양보할 수 있다는 발언을 잇달아 했다. 이에 대해 대경위 회의자료도 “중국 쪽이 우리의 농수산물 문제에 어느 정도 신축적 입장을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후속작업은 하지 않았다고 통상교섭본부 쪽은 밝혔다.
한-중 협정을 추진하지 않은 배경에는 단순히 농산물 문제 등 경제적 이유만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경위 자료는 “최근 중국의 적극적 태도는 미국, 일본과의 동아시아 주도권 경쟁 등 정치·외교적인 측면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한-중 협정이 한-미 협정 및 대미 관계에 미칠 영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협상 상대를 정할 때 정치외교적인 고려가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문점2] 외곽 인사 2명 만나고 미국 여론 부정적 판단, 미 당국에는 언급도 못했다?
중국이 한-중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적극적인 쪽으로 선회한 것은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력한 카드가 생긴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대경위 자료도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협상전략 차원에서도 미국과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 가능하다”며
“한-미 협정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차이나 카드’ 이용은 일찌감치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대경위 자료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7월25일 미국 쪽에 한-중 협정 추진 관련 의견 문의를 한 결과 한-미 협정에 대한 역레버리지 가능성이 있다며 마커스 놀런드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원의 “미국에 앞서 중국과 에프티에이를 추진할 때 워싱턴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라는 말과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의 “미국 조야에서 불만의 소리가 들릴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외곽인사 외에 정작 미국 의회나 행정부 쪽의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자칫 미국 쪽에서 우리가 ‘차이나 카드’를 쓰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있을 수도 있어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경위 회의자료에는 한-중 협정 관련 보완작업으로 “한-중 협정 추진에 대한 미 행정부 및 의회의 입장을 확인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설사 한-미 협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할지라도 차이나 카드를 이용해 좀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차이나 카드에 대해 말도 못 꺼내봤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문점3] 지난해 9월 이후 ‘4대 선결조건’ 수용하면서까지 한-미 협정을 서두른 이유는
한-미 협정은 지난해 9월 제5차 대경위를 전후해서 급물살을 탄다. 지난해 10~11월께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경위 내부 문건을 보면 “제5차 대경위에서 한-미 협정에 대한 위원들의 반대가 없으므로 (올해 1월에 열린) 6차 회의시 보고하고 협상 개시를 준비한다”, “미국 쪽이 제기하는 주요 현안 해결은 주무 부처들이 10월까지 해결을 추진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자유무역협정 실무기획단에 참가했던 한 경제부처 관료는 “5차 대외경제위원회 전까지 한-미 협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협의가 없었다”며 “5차 대경위 회의 때 외교부와 통상교섭본부 쪽에서 미국과 협상 추진론을 들고 나오면서 일사천리로 추진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간 실무자 회의 때 외교부 독주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김현종 본부장이 2005년 9월 대통령의 중미 순방(9월8~17일)을 수행했을 때 장시간 독대를 해 이미 결정을 내렸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하면서 ‘선진형 통상국가로 나가기 위해선 한-미 협정이 필요하다’고 보고하자 대통령이 ‘추진하자’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본부장은 순방 직후 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 9월21일까지 미국 의회 의원들을 만나며 설득작업을 벌인다. 4대 선결조건 해결을 약속한 것도 이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미국 의회 의원 27명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김 본부장이 4대 선결조건 해결을 보장했다고 밝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해당사자들과 국민의 의견 수렴, 부처간 협의를 통한 종합적인 판단이 아니라 일부 친미 외교라인과 대통령의 밀실 논의와 결정에 따른 추진이었다’는 비판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예비점검회의를 통해 조금씩 협상을 개시하자는 합의를 이뤄나가고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소위 ‘4대 선결조건’도 하나씩 해결돼 나간 것이지 어느 시점에 갑자기 한-미 협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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