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사회에 FTA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각 산업마다 한미FTA로 인한 이해득실의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쁘다. 그러나
한미FTA가 미치는 영향은 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꿀 것이다. 우선 우리의 밥상은 어떻게 변할까?
“아이들과 아침식사를 하는 A씨는 불안하다. 밥상에 오른 음식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식품선택에 까다로운 A씨는 생협을 통해 유기농식품을 주문해왔지만, FTA로 농업이 몰락하면서 원하는 만큼 식품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은 감자와 두부가 유전자조작이 아닌지 유난히 신경 쓰인다. 미국의 끈질긴 요구로 유전자조작식품표시 해당 품목에서
하나둘 제외되더니 이젠 표시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 한미 FTA 체결 후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일 -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 농산물과 축산가공품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오게 된다. 지난 2월2일,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한국의 농산품 관세와 장벽을 낮춰 미국 농업생산자들이 최대한 이익을 얻도록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미 식품산업계의 열렬한 응원이 이어졌다.
캘 둘리, 식품협회회장은 “한국은 이미 여섯 번째로 큰 미국 농산물 수출 시장인데, FTA가 되면, 미국 식품회사는 한국시장에 더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다”말했다. 돈 불, 전국돈육생산자위원회장 (National Pork Producers Council)도 하루 육류단백질 섭취량의
44%를 돼지고기로 충당하는 한국시장에 진출하게 되는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농축산업자들이 다가올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면
한국의 농민들은 다가올 태풍에 보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맞서야 할 판이다. 그러나 농민만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미국산 농축산물 앞에
국민들의 건강도 안전하지 않게 된다.
미국의 축산업은 공장식 대량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동물을 공산품으로
취급한 공장식 대규모 축산업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광우병이며, 광우병은 소에게 육식사료를 줌으로써 발생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광우병 소가 워싱턴, 텍사스 그리고 최근 앨라바마에서 발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한미FTA 개시 전제조건 중의
하나로 광우병 때문에 금지했던 쇠고기 시장을 덜컥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하자마자 일주일 뒤인 3월13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는데도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강행은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국민을 인간광우병(BSE) 위험에 노출시키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문제는 이제 쇠고기뿐만 아니라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농산물이나 식품을 수입할 때 위생검사와 검역을 거치도록 하고 있고 그 기준은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미국 농산물을 수출하기
전에 검사하는 절차를 대폭 간소화 하거나 완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2006년 3월 31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제출한 '2006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미국은 한국의 사전수입승인제도가 까다롭고 미국표준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승인하지
않은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농축산품을 수입 통관 절차를 간소화해 빨리 수입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식품첨가물은 식품에 섞여 매일
섭취하기 때문에 몸에 해로워서도 안되고, 장기간 섭취해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식품첨가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꼼꼼하게 안전성을 확인하여 승인해야 한다. 수입 통관절차를 간단하게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최대 농약잔류량제한(MRL) 검사를
완화하라고 강요했다. 2004년 한국 식약청은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검사 품목을 196개에서 47개로 대폭 축소했다. 반면 일본은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을 위해 올해 5월 29일부터 농약잔류량제한 검사 항목을 280여개에서 799개의 농약으로 검사폭을 대폭 확대했다.
미국이 최대 농약잔류량 제한 검사를 완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식품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수입해서 먹을 농축산물에 방부제와 농약을 광범위하게 살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우리의 유전자조작 표시
제도에 심히 유감이 많다. 따라서 이번 한미FTA를 계기로 한국 시민사회가 오랜 운동을 통해 제도화한 유전자조작 표시제에 대해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최대의 GMO(유전자 조작식품)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2005년 말 미국에서 재배된 콩,
옥수수, 목화의 87%, 52%, 79%가 유전자변형작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유전자조작식품을 전통적인 종자개량식품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된 농산물의 최종물이 ‘콩’이면 ‘콩’이지 그게 유전자조작을 했건 안했건 소비자도 생산자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품검역 시스템에도 문제가 많다. 따라서 중국산 납 꽃게 파동, 김치 납 검출, 장어 말라카이트그린 발암물질 검출과 같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수입 검역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우리 식탁에서 중요한 식품 순서로 위생 검사 항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기준을 더 낮추게 될 판이다. 또한 SPS 기준완화는 악성 가축전염병과 유해병해충의 유입 가능성을 높여, 국내 동식물보호와 환경차원에서도 문제가
된다.
한국이 유전자조작 식품, 유기농 식품 등에 대해 라벨링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나 광우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쇠고기 부위나
조류독감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가금류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에
임하는 한국정부의 자세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한미FTA가 국민들의 건강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대기업의 반도체 제품 하나 더 팔아먹기 위한 협상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들 미국이 잘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의료제도가 잘 갖춰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나의 미국인 친구는 지금 한국에서 논문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요리를 하던 친구의 어머니가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오른쪽 팔 수술, 화상치료, 이송, 물리치료에 든 비용이 모두
2억이라고 했다. 난 깜짝 놀랐다.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친구는 전통적인 민간요법이나 값이 싼 무자격 의사에게 불법으로 시술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이빨 신경 치료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이빨을 뽑아버린다는 이야기나 미국으로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이 아프면 한국에
돌아와 치료를 받고 다시 돌아가도 비행기 값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닌 것이다.
한미FTA가 만들어낼 세상은 이처럼 미국의
실패한 값비싼 의료서비스가 한국에 도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우석균씨는 한미FTA는 바로 약값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협정에서 새로 개발되는 약은 무조건 선진 7국 평균약값으로 하고, 또 특허기간을 연장하여 값싼 복제 의약품 생산을 막으려
한다. 선진 7국 평균약값? 대표적인 것이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다. 약값이 한 알에 2만5천원, 한 달에 300만~600만원이 들고, 보험
적용이 되어도 90만~180만원을 내야 했던 약. 마침내 백혈병 환자들이 여의도 노바티스사 앞에서 “약이 없어 죽을 수는 있어도 돈이 없어 죽을
수는 없다”고 외치게 했던 이 비싼 약값은, ‘선진 7국 평균약값’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약값은 미국 약값의 33%, 선진국 약값의
48%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되면 약값이 두 배 내지 세 배로 뛰는 것은 당연지사다. 소비자 부담도 문제지만 건강보험 재정은? 현재 약값으로
나가는 돈은 8조원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30%다. 이 돈이 두세 배로 뛰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이 견딜 수 있을까? 기존 의료서비스가
상업화되고, 병원이 주식회사들처럼 영리병원이 되면 돈이 있는 사람들만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뇌종양, 백혈병, 에이즈 등 비싼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의 모임도 한미FTA를 반대하고 나섰다.
“신장암은 치료약이 없어 이 약, 저
약을 복합적으로 치료하는데 제 어머니의 경우 한달에 500만 원 정도 듭니다. 그런데 미국 화이자제약사와 독일 바이엘제약사에서 신장암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한달 분량이 8500 달러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들여와 한국에서 판매한다면 한 달에 850만 원
정도 들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약가 그대로 들여올 수는 없습니다. 협상 통해서 적절한 가격을 책정해야 보험재정이 감당할 수 있고 환자들도
보험적용을 받아 약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 못 먹는 가슴 아픈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습니까.” -
신장암같이이겨내요(신장암환우회)
한미FTA를 둘러싼 찬반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경제대국 미국과 맺는
FTA의 경제적 효과도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온 국민들의 건강과 밥상을 위험에 노출하는 FTA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사실 현재
진행되는 한미FTA에 미래세대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전혀 없다. 지금 우리 어른들이 선택한 결과가 앞으로 우리 미래세대들의 일상까지 대대손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연 우리 자신들의 건강과 미래세대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식품에 대한 접근권이 한미FTA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녹색연합 이유진 활동가의 글입니다. www.greenkorea.org 녹색연합 홈페이지 칼럼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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