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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FTA로 망한 멕시코는 노대통령의 미래

baejjaera 2006. 6. 5. 19:53
FTA로 망한 멕시코는 노대통령의 미래
[비나리의 초록공명] 살리나스와 포토시의 비극, 암담한 노대통령의 미래
 
우석훈
 
1. 

난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인간적인 연민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정책과 이데올로기라는 면에서 2003년 6월에 "2만불 경제"와 이라크 파병으로 가는 길이 전혀 다르다고 등을 돌리게 되었지만, 상고출신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러 가지로 미리 예상을 해보는 편인데,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한미 FTA를 이렇게 정권의 치적사업으로 들고 나올 것이라고는 올해의 대통령 신년사를 듣기 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무엇이 그에게 이렇게 한미 FTA를 집착하게 만드는지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미국 어디에선가 망명객 비슷하게 떠돌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살리나스 대통령과 같은 노년을 맞고 싶어서 그런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지만 뭔가 단단히 정보에 왜곡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정도를 해보는 편이다.

한미 FTA는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과는 성격과 질을 전혀 달리한다. EU에 가입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곤란해진 스위스가 세 번이나 판을 깨면서 지리하게 협상을 계속할 만큼 기술적인 복잡성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협약이다. 그리고 양자 협약 중 미국과의 협약은 판을 깨기도 어렵고, 재협상도 매우 어려운 특수 조건이라서 만약 체결한다고 해도 훨씬 더 신중하게 해야하는데, 별로 그럴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지나간 일이지만 IMF 경제위기 때 YS가 청문회에 올라가는 일이 벌어졌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너무 선하고 용서하기를 잘 하는 민족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IMF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YS가 공식적으로 제대로 된 사죄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중에 잘 살게 되면 결국은 나한테 고맙다고들 할거야...

클린턴이 즐거 사용했던 매정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난다.

바보야, 중요한 건 경제야...

2.

박근혜는 한미 FTA에 대해서 신중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도 신중하게 뭔가 생각하거나 따져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고, 만약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덤벙대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원칙적인 생각 정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미국과의 FTA에서 1차적으로는 농업과 중소기업 중 경쟁 중인 기업이 어려워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특수분야 즉 소위 고급 서비스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영업들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진다. 의료와 교육과 같은 복지 분야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단위 지역에서 공무원보다 고용량이 많다는 미장원이 분기점이 될 것 같다. 과연 미장원까지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게 될 것인가를 지금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과 같이 미장원이 자영업 붕괴 속에서도 버틸 수 있다면 이 분야도 안전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미국을 기지로 하는 다국적 기업이 국내 법규의 통제를 벗어나 특수하게 활동하는 특별경제활동을 용인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이다. 가장 쉽게 표현하면 인천이 경제특구로 인해서 좋아질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서 국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장기적으로 미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경제특구로 인한 장기적 폐해가 더 커질 것인가에 관한 질문과 비슷하다. 미국 국적을 가진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한국 전체가 경제특구가 되는 조약이다.

생각보다는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미칠 조약인데, 도대체 정부 내에 통국적 기업(trans-national)이라고 부르는 최근의 미국 대기업의 제3세계 경제전략에 대한 전문가가 한 명이라도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보고 싶을 지경이다.

아니, 이미 외국인에게 넘어간 우리나라 은행들 중에서 한미 FTA 이후에 자국 은행으로 버틸만한 은행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남은 은행들은 어떻게 수익모델을 확보하고,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 은행들은 어떻게 영업전략을 가질 것이지 검토해봤는지 묻고 싶다.

외자유치와 이로 인한 고용창출 그리고 장기적으로 세계적 수출확대라는 세 가지 이익이 있다고 하지만, 통계의 환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부문별로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세밀하게 본다고 하더라도 다국적 기업의 경영전략은 유기적으로 변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나라 수준에서 머리를 쥐어짠다고 해도 미리 알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 지금 자본이 부족해서 경제운용에 차질이 생기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해보자. 수치로 정부가 제시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정부 전문가들도 자본과잉인 상태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다. 부동산과 농지 그리고 토지로 몰리던 국내 자본이 수용처를 찾지 못해서 해외 부동산 투자를 권유하고 있는 실정이고, 거시적으로는 원화절상이라는 환율변동이 우리나라의 자본과잉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본은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많은데, 투자할만한 활동 즉 정상이윤율을 확보해줄 활동이 없어서 경제가 어려운 것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탈출구는 외자유치 부족은 아니다. 유동성 부족으로 허덕거리던 IMF 직후의 상황은 분명히 아닌데, 한미 FTA는 자본유치가 필요하다는 잘못된 판단 위에 서 있기는 하다.

3.

원형 그대로의 한미 FTA의 모습은 나프타 이후의 멕시코의 모습이 미래를 보여준다. 60만 정도의 고용이 늘었다고 하는데, 멕시코 인구가 1억이다. 외형적으로는 나프타를 통해서 미국 국경선을 넘는 불법이민을 줄인다고 했는데, 지금은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군대까지 투입한다고 하는 상황이다. 멕시코 정도의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시장경제 그리고 나름대로는 튼튼한 자본주의의 토대에서 농민군을 중심으로 한 반군 사파티스타가 나프타 이후에 생겨났다. 이라크나 코스보 같은 불안한 국가와 멕시코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만 사파티스타의 영웅 마르코스가 공공연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멕시코가 과연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회 지수이다.

우리나라에 반군이 생길 여지가 지금까지 있었는가? 마찬가지로 90년대 초반까지 멕시코는 우리나라보다 더 튼튼하고 강한 나라이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었다. 그런 나라에서 지금 인디오에 대한 착취와 미국의 옥수수 수입금지를 외치는 반군이 버젓이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겪게 될 변화의 한 단면을 미리 볼 수 있게 해주는 징표이다.

4.

한국이 멕시코처럼 될 것인가? 10년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반군이 활동하고, 농촌이 완전히 붕괴하고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도시는 미국의 하청을 받는 단순 제조업이 자리잡고 있는 해안도시로 될 것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멕시코보다 미국에서 멀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가는 것 보다는 그냥 이민을 가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에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군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일은 별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조립산업의 하청으로 멕시코 기업을 집어삼키거나 직접 진출했던 것과는 달리 집중화되어 있는 몇 개의 재벌에 대한 직접 지배방식을 선택할 것 같다. FDI 중 그린필드 투자(green-field investment)보다는 중간형인 조인트 벤처나 지분참여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노동력은 멕시코처럼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결합시키는 새로운 전략이 한미 FTA 초기 2∼3년 내에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민중들이 지금의 재벌들이라도 미국으로 넘어가지 않게 모금해서 지켜내야 한다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자국민의 일정 비율을 노동자로 고용해달라고 사회적 협약을 해야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제일 곤란한 것은 금융계가 미국계로 전환된 다음에는 내국민의 창업이 실질적으로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이건 멕시코에서 이미 벌어진 일이다. 고소득자의 예금을 받고 저이자로 관리해주는 쉽게 돈버는 일이 있기도 하고, 굳이 멕시코 영세기업의 창업에 대부를 해주는 어려운 길을 걸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멕시코 기업의 창업이 지금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야말로 돈줄을 쥐면 실물경제는 꼼짝할 여지가 별로 없다.

사기치는 가짜벤처가 지원금을 다 가져갔다고 그렇게 비판받는 DJ의 벤처지원법도 정말 흘러간 옛날 일 같이 될 것이다. 미국 기업과 경쟁하라고 한국 정부에서 한국 기업에게 금융이든 보조금이든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한다? 어려운 일이다.

창업도 곤란하고, 자영업도 곤란해지고, 농업도 붕괴된 사회에서 남아있는 장기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경제활동이 무엇일까?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사회로 전환된다. 멕시코가 지금 그렇다.

5. 

기술도 들어오고, 새로운 경영기법도 배워서 사회도 혁신적이 되고, 서비스업도 살아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게 말이 되기 위해서는 '수용자 조건'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급하게 만든 공공기술이전과 관련된 몇 가지 법률을 정비하고, 여기에서 규정된 특수조건들을 FAT와 연동시켜서 뭔가의 수용자 조건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줄 사람이 전혀 줄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협"의 정신에 근거하여 주는 척이라도 하는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는다.

의료산업과 교육산업도 마찬가지로 고급서비스로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되는 수용자 조건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만들어놓서 달랑 4페이지 보여준 협상원안에 수용자 조건이라는 개념 자체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고, 정부의 대책에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혁신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도와 개념도도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과의 교류에서 실질적으로 무슨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지금도 해외 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도록 여러 가지 난리들을 쳐서 제도정비를 마쳤는데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건 불편해서가 아니라 별로 돈이 벌어질 것 같지 않아서 그렇다. 한미 FTA를 해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이유가 없다면 특별한 전략적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협상 하나 덜컹 했다고 그런 조건이 생기지 않는다.

미국 기업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한미 FTA는 아예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들어오게 하고 싶기 때문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줄 것인데, 이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 바로 국내 기업들과의 경쟁 회피 - 보통은 '역차별'이라고 부른다 - 와 소비시장에 대한 접근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다. 입장 바꿔서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국민의 손해가 미국 기업의 수익률 개선이 되는 것이다.

6. 포토시의 비극

멕시코의 포토시에서 벌어진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픈 사건 중의 하나이다. 포토시라는 도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픈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인데, 이 도시에서 벌어진 또 다른 참상은 내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한다고 해도 생각만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슬픈 비극이다.

포토시에는 은이 많이 났기 때문에 학살당한 인디오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노예처럼 끌려와 은광의 노동자가 되었다. 교황청은 뇌물을 받고 이러한 노예 행위를 눈감아 주었는데, 스페인 국내법이 임금을 지불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두운 은광에서 노동하는 인디오들에게 마약을 판매하였고, 그들을 알콜 중독자로 만들었다. 알콜과 마약에 찌든 인디오들은 평균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어두운 탄광에서 죽어갔다.

이들은 협상대표단을 구성해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했는데, 이 때 스페인 관리들이 인디오는 마약과 술에 찌든 인간 쓰레기라는 보고서를 연이어 올렸고, 하나님도 믿지 않은 사악한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은광에서의 작은 농성에도 잔인한 학살을 서슴치 않았다.

멕시코 시티에 줄지어 서 있는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와 커다란 성당의 금박을 두른 예수상은 포토시에서 죽어간 인디오의 피로 새겨진 건물들이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슬픈 도시 포토시에는 더 이상 은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해도 슬픈 잉카 문명의 전성지가 어떻게 수탈당했는지 보여주는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포토시의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프타 이후에 멕시코에 진출한 메탈클래드사는 이 슬픈 도시에 산업폐기물 처리장을 만들었다. 석면 처리 정도나 하던 메탈클래드는 아무런 제지나 기준 없이 포토시에 수은과 방사능을 비롯한 산업폐기물을 쏟아부었는데, 몰락한 인디오의 수탈의 도시 포토시의 원주민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대응할만한 지도자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10년이 지날 때까지도 다리 몇 개와 도로 몇 개가 생겼다고 기뻐할만큼 순박한 사람들이다.

이후에 포토시에서는 발암률이 급격히 높아졌고, 기형아 출산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포토시의 지역 공무원은 우리나라의 지방공무원과 달랐고, 메탈클래드사의 부지 확장에 대해서 사업승인을 내주지 않고, 지역 공해병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절차에 나섰다. 멕시코 지방공무원들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부패율이 훨씬 낮은 편이다.

이렇게 해서 문제가 된 포토시의 메탈클래드사의 소송으로 결국 멕시코가 1,600만 달러로 재판에 졌고, 멕시코 정부는 미국 기업에게 보상을 하고 나서는 예산 부족으로 포토시 주민의 이주비 지원도 못해주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나프타의 11조라는 작은 문장 하나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조항이 되었다. 한국 정부는 이 조항을 한국측 협상 조항에 먼저 집어넣고 미국으로 들고 갔다. 빼달라는 것이 협상이 되어야 하는데,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엄청나게 잘난 척 하면서 들고 갔다. 원래 있더라도 미국이 요구하면 마지못해 넣고 그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하는 협상의 기본을 이 정부는 잘 지키지 않는다.

같은 일이 동해의 여러 탄광지역에서 벌어질 수 있고, 인구 1만이 안 되는 우리나라의 작은 읍이나 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폐기물을 청정바다에 해상투기하는 중인데, 어느 지점인지는 정확히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인디오의 슬픔을 안고 있는 포토시의 비극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7. 임기 중에 체결하면 안 된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미 FTA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노무현 임기 중에 벌어질 일이 아니고, 그 차기 대통령 혹은 차차기 대통령 임기 때 본격적으로 드러날 일이다. 초기 2∼3년에는 긍정적 효과가 주로 보이다가, 5년쯤 지나가면 부정적 효과가 보이기 시작하다가, 10년이 되면 그 폐해가 곪아터지게 된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미국과 FTA를 체결해서 10년이 되었는데 정말 잘 되었다고 전 세계가 박수치는 좋은 사례는 별로 없다. 캐나다의 경우도 들여다보면 우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내각을 총동원해서 협상에 나서겠다는 대통령을 현재로서는 말릴 방법은 별로 없어 보인다. 청문회에 서게 되거나 아니면, 망명으로 떠돌고 있는 살리나스 대통령의 운명을 맞게 되든, 그건 통치권자이자 개인인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운명에 관한 일이므로 현재로서는 '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제도적으로는 말릴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젊은 대통령을 뽑아놓으니까 한 가지 불편한 게, 임기 말이 되어도 힘이 펄펄 나서 도무지 국민들의 우려 같은 것을 들으려고 영 하지를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선거에 그렇게 참패를 했어도 역시 상대적으로 젊은 대통령이라서 그런지 패기가 아직도 하늘을 찌른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차기를 맡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하든 안하든, 혹은 몇 가지 조항이라도 손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협상전략적으로도 만약 노무현의 행정부가 잠깐의 실수로 정비하지 못한 조항이 있다면, 다음 대통령이 좀 손을 보는 것이 우리나라의 협상력을 높이게 된다.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혹은 고건이든 아니면 민주노동당의 그 누가 되었든 한미 FTA의 방침 혹은 '자신의 원안'을 가지고 대선공약으로 대선을 치룬다면 어떤 경우가 되었든 지금보다 단 한 글자라도 나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호전된다. 미국이 협상기한을 들고 나왔다면, 우리나라는 대선을 들고 협상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좌파나 우파, 개혁이나 보수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전혀 상관없이 게임 이론의 균형조건 상으로 지금보다는 협상력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이 괜히 내년 5월을 협상시한으로 들고 나온 것은 아닐 것 같다. 다음 대선 후보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미국이 양보해야 할 것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한 번에 협상을 끝내는 것이 미국으로 볼 때 더 좋지 않겠는가...

레임덕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로 통치권을 유지하겠다고 하는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한 발만 양보해서 차기 대통령에게 약간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나라에게는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편이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는 게 내 어리석은 생각이다.

차분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박근혜의 입장도 현 대통령의 입장보다는 훨씬 전향적이고 진취적이다. 세상에,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진 셈이다. 한미 FTA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나라의 그 어떤 보수정치인도 대통령보다는 개혁적이다. 세상에나... 현실이 정말 그렇다.

전임 대통령이 카드깡을 넘겨주었다고 그렇게 전임자 핑계를 대었는데, 한미 FTA야말로 후임자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는 입장이다.

YS에게 IMF를 물려받은 DJ 시절 생각을 한 번 해보자. 한 발만 양보해서 최종타결을 6개월만 미루면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는다. 급하다고?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제대로 검토도 해보지 않은 이 상황에서 6개월 때문에 나라 망하고 개혁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나?

노무현 대통령이 경영하는 이 나라는 종업원 10명의 벤처기업도 아니고, 경제성장 초기에 실패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었던 60년대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딸린 국민만 50만 명에 육박하는 이 큰 덩치의 경제를 열린우리당 창당하듯이 후다닥 끌고 가기는 어렵다.

국민이 편해야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후에 은퇴하고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어떤 길이 국민들이 편해지는지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차분히 고민해도 과하지 않다.

개혁할 때에는 작은 신문이나 작은 인터넷 매체의 의견 그리고 온갖 종류의 눈치를 전부 보면서 천천히 하던 그 신중함이 왜 한미 FTA에 임해서만 “용기”와 “패기”를 앞세우는 벤처 경영방식으로 바뀌는가? 대한민국, 이제는 벤처기업이 결코 아니다. 지금 빨리 가면 대통령과 몇 사람이 행복해지겠지만, 조금만 더 신중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박사로 초록정치연대(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
* 최근 <아픈 아이들의 세대 - 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뿌리와이파리, 2005)를 출간했습니다.

* 필자의 블로그안내 http://blog.naver.com/wasang2













2006/06/05 [08:46] ⓒ대자보
출처 : 건강세상 평등세상
글쓴이 : 반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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