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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영어로 꿈꾼다는 미국 변호사 그에게 맡겨진 한국경제의 운명

baejjaera 2006. 8. 7. 17:44
영어로 꿈꾼다는 미국 변호사 그에게 맡겨진 한국경제의 운명

 [한미FTA 처음부터 다시 보자⑧] 김현종 본부장은 검증받지 않아도 되나

[오마이뉴스 2006-08-07 13:49]    

 

 
 "한강의 기적."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지켜본 서구 경제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한 표현이지만, 사실 이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서구, 특히 미국의 학자와 관료 가운데 누구도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리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눈에 한국은 시장·노동력·자본 등 어떤 면에서도 서구식 자본주의가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미개한 사회'로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한국의 문화까지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미군정 당국은 한국어에 대해서도 "논리적 생각을 전달하기에 부적절한 언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한국경제를 보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크게 뜨며 "이것은 기적이다"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에서 '한국식 경제의 종말'까지

 
▲ 김현종 한미 FTA 통상교섭본부장.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서구인들이 유독 아시아의 국가에 "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붙이는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과 서구중심적 편견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쓴 막스 베버 역시 중국과 같이 유교문화에 젖은 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베버보다 한참 뒤의 경제학자들조차 예외가 아니었으니, 베버의 편견과 오류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오히려 필자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최근 김현종 교섭본부장이 주장하는 "한국식 경제 종말론"이다. 그가 "일본식 경제모델은 한계에 달했다"라고 선언하며 경제체제를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지 10년 이상 지났는데 아직 2만 달러 문턱에 머물고 있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택했던 일본식 경제성장 모델로는 한계에 달했다는 이야기다. 이제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 때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게 개혁과 개방이다. 비행기로 치면 이코노미 클래스의 맨 앞줄에 앉은 우리나라가 비즈니스 클래스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를 FTA가 제공해줄 것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말하는 한·미 FTA 협상' - <중앙일보> 2006.2.8)

한국 경제성장률은 평균의 두배

국민소득이 10년 만에 '두 배밖에' 안 늘어났다는 사실, 그것이 김현종이 한국식 경제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유다. 그의 주장대로 다른 나라들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 한국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것일까.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6%였다. 1994년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멕시코는 평균보다 낮은 2.5%를 기록했고, 캐나다는 미국(3.2%)과 비슷한 3.6%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에 비해 한국의 성장률은 전체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5.2%였다. 이는 아일랜드를 제외하고는 OECD 전체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 OECD국가 지난 10년간 평균 GDP 성장률. (자료출처 OECD)
ⓒ2006 강인규
한국이 97년부터 99년 사이에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었고, 아직까지 이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괄목할 만한 성과임이 틀림없다.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1980년부터 2005년까지의 국내총생산 증가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통계수치들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첫째는 '김현종 한국경제 종말론'이 그다지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밝힌 적이 없으며 "미국과의 FTA를 통해 한국경제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막연한 주장을 되풀이해 왔을 뿐이다. 결국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시켰고, 한미FTA를 참여정부의 핵심적 의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다른 사실은, 한국정부와 재계(이 둘을 구분할 수 있다면)가 70년대식 개발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개발시대에나 가능한 두 자리 성장률에 익숙해진 이들의 눈은 10년마다 두 배씩 이상 증가해 온 한국경제에 사망 선고를 내릴 정도로 합리성을 잃은 상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국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해' 한미FTA라는 전기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한국 국내총생산(GDP) 증가 추이.(자료출처 IMF)
ⓒ2006 강인규
경제는 성장한다, 그런데 왜 우린 가난한가

위의 통계자료들을 바라보는 많은 독자가 의아해할 것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입증하는 위의 통계수치와 서민들의 '체감지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서민들의 삶 사이에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한국경제는 놀랄 만한 성장을 계속해 왔고 기업들의 매출과 순이익은 수배로 늘었으나, 서민들의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성장이 양극화의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나 한국의 재계와 보수언론은 '분배는 성장의 적'이며 '분배를 말하면 좌파적 반시장주의'라는 담론으로 사회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무력화해왔다.

소외된 계층을 돌아볼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이 어려운 시기" 혹은 "이제 겨우 잘 풀리려는데…". 이들에게 분배에 신경써도 좋을 '한가한 시기'는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성장주의에 매몰된 현정부는 두명이 2만달러씩 버는 것보다 한 명은 소득이 전혀 없더라도 다른 한 사람이 6만달러를 버는 것을 '성장'으로 여긴다. 앞의 경우 평균소득은 2만 달러지만, 뒤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능력 이상의 일을 떠맡은 김현종 본부장

▲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7월 24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 즉각 중단과 김현종 통상본부장, 김종훈 수석대표 등 책임자 해임을 요구했다.
ⓒ2006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무현 대통령과 김현종 본부장은 역시 별다른 근거 없이 '한미FTA=양극화 해소'라는 등식을 주장한다. 김현종 본부장은 이 문제도 '미국의 선진시스템'을 따라 자동으로 해결된다고 믿고 싶을지 모르지만, 미국사회는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지닌 세계적 복지 후진국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특별히 사악해서가 아니라, 기업들의 이익 극대화 노력이 공공부문을 잠식하는 상황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대학에서 박봉의 강사료를 받아 매달 50만 원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만 하는 필자나, 비싼 약값 때문에 캐나다로 '약 구매 단체관광'을 떠나야 하는 미국인들의 고통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기업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는 한미FTA는 필연적으로 공공성 서비스와 복지를 약화시켜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경제가 전혀 다른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기업들의 이익 보장을 통해 발전한 미국경제와 달리, 한국은 '새마을운동'부터 정보기술중심의 '신경제', 그리고 심지어 '한류문화 육성'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으로 정부주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발전모델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이 한국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한미FTA는 한국의 경제체제가 견뎌낼 수 있는 것 이상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미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정부의 역할과 공공부문을 모두 '투명성에 어긋나는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을 넘어 한국의 근대화 모델 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반세기 넘게 의존해 온 정부주도의 발전모델에 대한 대안도 없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통상법 전공 미국 변호사의 경제 해법

한미FTA가 단순히 통상문제 이상이라는 점에서, 이 협상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현종 본부장 역시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한국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경제도 제대로 연구해본 일이 없는 통상법 전공의 미국 변호사다. 그런 그가 '한국식 발전 모델의 종말'을 주장하며 미국식 경제체제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고, 온 사회가 그 판단에 일사불란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미FTA에 반대하는 국민을 구한말의 수구파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나는 구체적인 근거없이 '한국식 경제의 종말'을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가망성없는 미개한 한국경제"에 혀를 차는 (그리고 얼마 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는) 50년대 미국 베버주의 경제학자의 모습을 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을 떠나 삶 대부분을 미국에서 살아온 김현종 교섭본부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냐"라는 질문으로 몰아세우거나 비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라 "생각도 영어로 하고 꿈도 영어로 꾸는"(<신동아> 2004년 9월호) 그가 미국경제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한국경제와 사회 일반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과 이해를 쌓을 기회를 갖지 못했으며(스스로 한국에 대해서 '유학생과 토론하면서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와 함께 통상부에서 일했던 동료 변호사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국내법과 국내 산업, 통상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적임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신동아> 2004년 9월호)

▲ 한미 FTA 2차 협상 첫날인 7월 10일 오전 협상장인 서울 신라호텔 부근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협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현종은 검증받지 않아도 좋은가

최근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사표를 냈다. 그리고 법무장관 인선을 두고 대통령과 집권당 사이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모두 당사자가 맡은 일에 적임자인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장은 아무런 검증과정 없이 기용되었다.

김현종 본부장은 대통령에게 한미FTA의 필요성을 설득할 때부터 2차 본 협상이 마무리된 현재까지 국민에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있다. 국민의 시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채 활동하고 있는 그를 한 언론은 "김현종 미스터리"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현종 본부장이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일이 국민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언론과의 접촉을 회피하는 그의 행동은 책임있는 관리의 태도로 볼 수 없다.

그는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교섭본부장으로 오기 전 미국 모교 고등학교의 교장직을 수락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했다. 안타까운 심정은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모교에 큰 도움을 주는 존경받는 교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대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을 자임하고 나섬으로써 국민을 우려 속에 몰아넣고 있다.

문제는 사태가 안타까움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경제의 미래와 관계없이 매사추세츠의 아름다운 교외에 자리잡은 모교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지만, 그가 남기고 간 결과를 몸으로 떠안아야 할 대부분의 한국인은 되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강인규 기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같은 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기호학으로 세상 읽기> (소명/공저)와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문학과 경계/공저)가 있다.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