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특허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력은 지난 87년 이전부터 20여 년 동안 계속 진행돼 왔습니다. FTA는 실상 미국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려는 시도의 결정판입니다.”
법무법인 ‘지평’의 남희섭(41, 한미FTA저지 국민운동본부 지재권분야 공동대표) 변리사는
“한미FTA 쟁점은 결국 의약품 주권의 문제로 귀결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남 변리사가 통상과 지재권 부분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연계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싸워온 것은 이번 한미 FTA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99년 지재권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시민단체인 정보공유연대를 만들어 현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정보공유연대는 이미 저작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해외단체들과 네트워크를
조직, 지재권 분야의 국제조약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남 변리사는 “FTA에서 의약품 분야의 핵심 쟁점은 우리사회가 의약품의 가격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강제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미국 제약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재권 분야 독점권 강화조치가 FTA협상을 통해 수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가장 위험한 독소조항으로 ‘비위반제소’ 문제를 지적한다. 한국정부의 공공적 조치들이 미국 기업의
기대이익에 어긋날 경우, 지재권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아니더라도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남
변리사는 또 의약품 허가가 특허와 연계되는 부분도 매우 우려스러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특허권은 개인의 ‘사권’이기 때문에 특허가 침해되면
특허자 본인이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특허청·식약청 연계’ 부분이 수용될 경우, 식약청이 특허권자의 권리행사를 대행하는 꼴이 되고
만다.
남 변리사는 특히 “등록된 특허의 30%가 부실한 권리이고, 실제 특허 침해소송에서도 특허권자가 이기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다”면서 “식약청이 의약품 품목허가 과정에서 특허권자가 준 정보만 믿고 허가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의약품 분야의 예상이슈가 수용됐을 경우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으로는 앞으로 한국 정부가 지재권 제도를 개혁하거나 국내
현실에 맞도록 개정하는 노력 자체가 봉쇄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남 변리사는 “이미 20년 전에 미국의 통상압력을 받아 특허법이
개정됐고, 그 후 지금까지 미국으로부터 제도개선 요구를 계속 받아오고 있다”면서 “이번 FTA에서 특허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면,
앞으로 특허법을 개정하기 위해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결과로는 특허기간 연장, 데이터
독점권 대상의 확대,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위축, 의약품 병행수입 불가 등을 거론했다.
남 변리사는 “결론적으로 이번 FTA는 의약품
특허권과 데이터 독점권을 강화해, 값싼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막고,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과 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범국본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현행 지재권
제도가 왜곡된 가장 큰 이유는 지재권을 무역과 연계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무역기구설립협정의 부속협정으로 체결된 ‘트립스 협정’도 지재권을 무역과
관련된 제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FTA는 이러한 잘못된 모순의 극단에 서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정부가 특허문제를
방어하기 위해 요구했으면 하는 사안이 있다면. 다시 말하지만 지적재산권 분야는 이번 협상 의제에서 제외돼야 합니다. 한국의 지재권
제도는 미국과 협상해서 정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20년 동안 한국의 지재권 제도는 미국의 요구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돼 있습니다.
-그러나 협상의 주요 이슈가 지재권 강화 부분이 될 텐데요. 맞습니다. 원칙적으로 지재권을 협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제외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차선으로 공중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각국 정부의 조치를 ‘트립스
협정’이 방해할 수 없다는 점을 천명한 도하선언문이 FTA 협정문에 포함돼도록 해야 합니다. 특허권은 실상 무역자유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발명기술을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공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FTA에 맞선 국내 제약기업의 대응전략이
있다면. 미국은 이번 협상을 통해 권리보호 강화만을 주문할 게 뻔합니다. 그러나 미국 국내법은 권리보호와 함께 이를 지나치게
확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완장치도 마련돼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보완장치를 함께 협정문에 두려고 하지 않겠지요. 따라서 국내 제약기업들이
보완장치가 제도적으로 도입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특허권이 살이 있는 동안 제네릭의 시장진입을 가능케 하는
제도나, 불공정거래행위 시정 목적이나 정부 사용을 위해 특허발명의 광범위한 강제시실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제도를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것들이
진지하게 고민돼야 합니다.
-이번 FTA와 관련해서 특허청을 비판하는 주장을 거듭 내놨던 것 같은 데요. 특허청은
지재권을 강화했을 때 이득을 보는 이해집단의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이 기관은 100% 자체수입을 세출로 충당하는 특별회계로 운영되는 데, 지난
2003년의 경우 세입 1,813억원 중 1,600억원(86%)이 특허등록 등에 따른 수수료 수입입니다. 이 가운데 608억원(37%)은
권리유지료이고요. 이러한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특허청은 지재권 강화에 주력할 수 밖에 없고, 미국 연수를 다녀온 공무원들이 미국의 논리를
주입받아 지재권 강화의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