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시론] FTA 협상의 무능과 독선
국제조약은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법률이 된다. 문제가 통상 조약이라면 한 점, 한 획 때문에 수천억원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통상협정이 발효되면 해당 관료는 인사상 이익이 상당하다. 그래서인가. 대충 빨리 번역한 협정문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 스스로도 한·EU 협정문상 200군데가 넘는 오류가 있음을 인정했다. 스스로 일러 선진통상국가라고 했다. 어떤가 그 참담한 실상이.
협정문 오역보다 참담한 실상
그렇다면 문제는 번역만일까. 아니다. 경제효과 분석도 엉터리다. 한·미 FTA가 GDP 6%, 한·EU FTA는 5.6%, 엿장수 마음이다. 부르는 게 값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 정부만을 위해 주문제작한 특수품이다. 그토록 집요하게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헐뜯던, 이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집착, 계승한 것이 한·미 FTA GDP 6% 성장이라는 수치다. 정부 측이 사용한 똑 같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국제표준’ 방식으로 돌려보니, 한·미 FTA GDP 경제효과는 0.08%, 한·EU FTA는 0.14%에서 시작한다. 십년치 합한 수치다. 정부는 이 두 개의 FTA만으로 일자리가 수십만개 생긴다고 한다. 내가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일자리가 그만큼 생기려면 수백년이 걸린다. 이런 FTA하면 무역수지가 흑자란다. 그러면서 엄청난 적자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 국책연구기관 용역보고서는 ‘대외비’라 해서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이뿐인가. 정부 측은 FTA하면 세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이 또한 엉터리다. 세수는 줄어든다.
진정 큰 일은 이런 번역이나 숫자 놀음 때문만이 아니다. 당장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한 SSM법안만 보자. 한·EU FTA가 발효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협상관료들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넣어야 할 유보조건을 안 넣었기 때문이다. 약값은 또 어떤가. 막상 자기들 EU에서는 위법한 ‘허가특허연계조항’이 포함된 약사법 개정을 목빼고 기다리고 있다. 거저 먹으려고 말이다. 왜 우리 서민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값을 내야 할 지경이 되었나. 어쩌다 우리가 ‘글로벌 호구’가 되고자 하나. 수년동안 지적해 온 이른바 ‘독소조항’, 그런 거 모른다고 통상관료들은 말한다. 한·미 FTA협상 개시 직전에만 해도 달랐다. 부처별로 ‘절대불가’ 사안들이 수두룩했다. 이것만은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협상이 끝나고, 거의 예외없이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자, 하는 말이 ‘제도선진화’였다. 관료들이 한때 ‘절대불가’라고 했던 그 수많은 조항들, 그것이 바로 독소조항이다.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관료주도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자, 이들은 관료주도 FTA에서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새로운 기득권의 통로를 연 것이다. 한·미, 한·EU FTA, 이만큼 노골적으로 재벌에게 봉사한 정책이 또 있을까. 서민들 등골빼서 재벌 살찌우고, 대다수 중소기업, 서비스업, 지적재산권에 뭐 하나 보탤 것이 없는, 그래서 복지는 고사하고 더 양극화될 나라, 지금의 통상정책이 가 닿을 곳이다.
정책 오류 막을 견제장치 필요
번역오류의 책임, 무능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통상교섭본부장이 져야 한다. 사퇴함이 마땅하다. 아니 절대 안한다던 한·미 FTA 재협상을 생각하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이다. 해서 통상교섭본부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 발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통상관료가 보였던 저 독선에서 비롯된 착오가 시정된다. 차제에 미국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하든가, 일본처럼 경제부처로 재편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통상절차법이다. 이 말 나온 지가 2005년이다. 외교통상부가 반대해서 여전히 제자리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 번역오류보다 더 큰 정책적 오류를 막기 위해서는 국회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통상절차법이다.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 무능과 독선, 되풀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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