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뼈 쇠고기'에 근거도 없는 '검역중단' 조치만 내려
수입중단땐 FTA비준 늦어질까 '무원칙한 면죄부'
『 지난 2006년부터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03년 말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미 쇠고기는 2006년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지렛대로 국내 수입이 재개됐다. 그러나 미국 측이 '뼈 없는 살코기'로 한정된 수입조건을 계속 어겨 실제 국내 유통은 올 4월부터 시작됐다.
미국은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자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판정한 것을 근거로 수입제한을 철폐하고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현행 수입조건조차 미국 측이 빈번하게 어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원칙 없이 봐주기로 일관해 미 쇠고기를 둘러싼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한창일 당시 미국 측은 자국 쇠고기 수입 재개가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입검역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전량 반송되자 FTA 협상을 엎겠다고 우리 측을 위협했다. 정부의 협상 관계자들은 “쇠고기 뼛조각에 걸려 FTA 협상이 결렬될 판”이라며 장탄식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한미 FTA 협상은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지만 이제는 ‘한미 FTA에 걸려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과 검역주권이 내팽개쳐졌다’는 비판이 정부와 정치권ㆍ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꼽는 한미 FTA의 조기 비준에 급급해 수입조건을 번번이 어기고 있는 미국 쇠고기에 원칙 없이 면죄부를 주고 안전성이 불안한 미 쇠고기의 전면개방 요구를 슬쩍 수용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인 등골뼈를 발견한 후 검역중단 조치를 내린 지난달 1일 재발시 주한 미국대사에게 ‘수입중단’으로 제재수위를 높이겠다고 경고하고도 지난달 24일에는 재발시에도 검역중단만 취하겠다고 후퇴한 것은 ‘미 쇠고기 봐주기’의 극치라 할 만하다. 국내 축산업계와 검역전문가들은 정부가 재발시 제재를 검역중단으로 유지한 것은 미국 측이 향후 쇠고기 수출과정에서 똑같은 오류를 또 저지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가 양국 간 조약을 어긴 상대국의 사정을 봐줘가며 제재를 취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당초의 경고대로 미 수입 쇠고기에서 SRM이 또 발견돼 ‘수입중단’ 조치를 내리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미 쇠고기 개방 확대는 물거품이 되거나 장기간 연기된다. 이 경우 연내 한미 FTA 비준도 물 건너 간다. 마이크 조핸스 미 농무장관은 미 쇠고기 검역이 재개된 지난달 24일 “여전히 한국 쇠고기 시장개방은 미흡해 의회의 한미 FTA 비준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압박했다. 남호경 한우협회 회장은 “정권이 ‘한미 FTA를 한건 했다’는 식으로 임기 중 무리하게 비준을 추진하면서 검역주권과 먹을거리의 안전이 한미 FTA의 제물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 7월 말 등골뼈가 발견된 후 정부가 검역중단 조치를 취한 것도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따르면 위반시 제재는 ▦수출 쇠고기 반송 및 폐기 ▦수출작업장 수출선적 중단 및 승인 취소 ▦수입중단 등 세가지뿐이다. 수입중단이 내려질 사안에 ‘미 쇠고기 조기 개방 확대→한미 FTA 비준’을 겨냥해 정부가 근거도 없는 검역중단 조치를 내린 셈이다. 일본은 지난해 1월 미 쇠고기에서 SRM이 발견되자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취한 뒤 현지조사 등을 거쳐 6개월 후 수입을 재개한 바 있다.
더욱이 정부가 ‘특별대우’를 해줘도 좋을 만큼 미 쇠고기가 크게 안전한 것도 아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의 쇠고기의 경우 일정 조건에 따라 SRM만 제거하면 원칙적으로 교역 과정에서 연령과 부위 제한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미 쇠고기와 광우병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위생ㆍ검역 전문가가 적지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광우병 감염 여부를 전수검사가 아닌 샘플링 검사로 하고 있어 확률의 오류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인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광우병의 무서운 점은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는 사실”이라며 “국제 의학계에서는 광우병 감염 소의 살코기도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위생검역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는 OIE의 판정이 났더라도 국민건강을 위해 정부가 독자적이고 보수적인 위생기준을 미국 측에 제시, 관철시킬 수 있지만 연구부족과 자료축적이 미흡한데다 한미 FTA 비준에 치중해 미국 측 주장에 휘둘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손철
기자 runir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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