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즉각 중단해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노동자 농민의 치열한 반대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학계와 재계의 찬반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유롭고 조용하기까지 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요구를 미국이 아닌 한국정부가 먼저에 제의한 탓인지도 모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최대 피해자는 농민이다. 사무관리직이나 이른바 ‘철밥통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체들도 그 피해자다. 비정규직은 물론이거니와 정규직도 안전하지 못하다. 서비스업이나 금융, 의료, 교육부문도 마찬가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다른 나라의 자유무역협정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 농민의 목소리는 커져가지만 ‘먼 나라 남의 일’처럼 여기는 사회분위기는 소귀에 경을 읽는 슬픈 현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추진 배경은 세계화 시대 국제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에 있다. 외국 자본과 선진 경영방식을 끌어들여 국내의 경쟁력을 배양하고, 수출 증대와 높은 경제성장률로 국민경제와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장밋빛 미래는 수출 증대 효과를 가져왔지만 실업 증가와 실질임금 저하, 경제성장률 저하, 빈부격차 심화로 사회양극화를 낳았고, 농촌 붕괴와 중소기업체 도산, 비정규직 양산, 사회의 공공성 약화 등으로 국민들의 생활은 오히려 더욱 궁핍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수출 증대로 이윤 창출을 이루었지만 그 창출된 이윤이 어디로 갔느냐는 더 큰 문제다. 돈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초토화시키는 초국적 외국기업들의 손아귀로 흡혈귀처럼 빠져들어 갔고, 그나마 경쟁력 있는 국내 재벌기업들의 잔치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11년을 넘긴 멕시코의 경우 전통 농작물인 옥수수 산업이 세계적 다국적 기업과 곡물메이저 기업인 카길에 의해 완전히 궤멸된 사실은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200백만 농민이 농촌과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발길을 돌릴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자 농민들, 사회안전망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월급봉투에 목매달며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은 애초부터 수혜의 대상이 아니었다. 경쟁 이데올로기로 혹세무민하는 정부와 기업의 찰떡궁합 탓으로 이윤 추구의 장애물일 뿐 보듬고 챙기며 함께 가야할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전세계적으로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은 200여개이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승인한 20여개를 제외하면 매우 낮은 수준의 무역협정이라고 한다. 즉, 180여개는 우려할만한 협정이 아니기 때문에 양자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자간 개방무역의 문은 과거 우루과이라운드에 의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현존하는 협정 중 파괴력이 가장 강한 협정이 될 거라고 한다. 경쟁력이 있든 없든, 비관세화 품목이든 아니든 모든 품목 혹은 90% 이상이 개방과 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은 각국의 공기업을 민영화(사유화)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공공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서민생활의 궁핍화를 재촉하는 상대 국가와 국민 경제에 대한 무차별적인 경쟁 이데올로기를 진리처럼 신봉하는 '제국적 신자유주의의 자본 쿠데타'나 다름없다. 미국은 자국의 기업이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노골적으로 유린하는 주권 침해 행위다. 또한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자기들이 이미 체결한 멕시코, 호주 등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지구상의 초강력한 초유의 양자간 협정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일류 강국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준비하지 않은 자의 무모함을 넘어 선, 한국정부의 무지와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며 '한국의 미국화'를 기대하는 친미부역 경제관료집단의 어리석음의 결과다. 준비하지 않은 한국정부의 고삐 풀린 태도나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몸이 달아오를대로 달아 있는 상황이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21세기 신식민주의 시대를 예고하는 서막이다. 을사늑약을 거쳐 한일병합이라는 치욕적인 식민지 상황이 초래되었고 을사오적도 생겨났다. IMF를 통해 적절한 한국 길들이기 작업이 종료되자 무한 이윤 추구의 칼날로 밀어붙이는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신식민지 상황, 혹은 ‘한국의 미국화’ 현상이 초래될 위기에 처해 있고, 을사오적에 버금가는 FTA 오적이 생겨날 처지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도 초국적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돈벌이 행각을 벌이는 지금의 국제질서는 19세기말 제국주의 식민지 개척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국화,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일원으로 편입되려고 하는 한국적 상황은 분명히 국가적 재난이자 민족적 위기 상황 그 자체다.
어느 나라이든 자유무역협정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또한 협상 조건과 수준이 맞지 않으면 어느 때고 중단할 수도 있다.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는다고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국가경제를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사태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2의 IMF 상황을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유무역협정 체결이야말로 제2의 IMF 상황보다 더 심한 타격과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협상이 진행 중이다. 곧 1차협상이 끝나면 내달(7월 10일 경) 서울에서 2차 협상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대안은 오직 한가지뿐이다. 협상의 조건과 내용 수준을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까다롭고 절대적 우위를 보장하는 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우아한 퇴각’, 혹은 ‘아름다운 결렬 선언’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이것이 현단계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스위스도 미국과 협상을 중단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도 3년째 중단된 상태다. 한국정부가 미국과 협상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포기이며 신성한 주권의 포기다. 미국 편입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으로서 제2의 신식민지 선언이다.
노무현대통령과 현 정부,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상단이 국가안보나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명분으로 미국의 눈치를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전혀 설득적이지 않다. 민족 분단 상황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미국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동북아질서와 국가안보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생존권과 주권이 걸려있는 자유무역협정이야말로 더 중대한 국가안보이기 때문이다. 협상 결렬 선언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협상단과 정부의 결단만이 신식민주의를 막는 최선의 방책이다.★<200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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