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날치기' 한미FTA 서명, 野 "정권 붕괴 자초"
야5당 "MB 서명, 1년 후 원점으로 돌아갈 것"
기사입력 2011-11-29 오전 10:54:55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1129103915
▲ 한미FTA 이행법안에 서명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
이 사진은 역사적인 장면이 될 겁니다. 한 나라의 정책주권, 입법권, 사법권을 포기하는 통상조약에 서명하는 이명박의 모습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겁니다. 나라의 주권을 포기하는 매국노로써 말이죠.
(나라의 주권을 포기하는 한미FTA에 서명한 이상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06년이 지난 2011년 나라의 정책주권, 입법권, 사법권을 잃는 일이 또 다시 벌어졌습니다. 제2의 을사늑약인 한미FTA가 오늘 서명될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요.
현세대는 후세대에 너무나도 큰 역사적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후세대를 볼 수 있을까요.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일본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을 슬퍼하여 민족적 울분을 표현한 논설인 시일야방성대곡이 떠오릅니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오늘 이 날을 큰소리로 운다'라는 뜻입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의 주된 내용 >
침략의 앞잡이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난하고 을사오적을 우리 강토와 국가를 남에게 바치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의 적(賊)'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조약은 고종황제가 승인을 거부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 - 인터넷 자료 -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국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국민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가치도 없는 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정부와 한나라당은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결이라고요. 다수결로 한미FTA를 비준했으니 정당하다 말합니다. 그런데 1905년 을사늑약도 다수결로 통과됐습니다.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만이 무조건 불가(不可)를 썼고,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책임을 황제에게 전가하면서 찬의를 표시하였다. 이 찬성한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 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각료 8대신 가운데 5대신이 찬성하였으니 조약 안건은 가결되었다고 선언했다. - 위키백과 중에서 -
을사늑약 (1905년 11월 17일) : 외교권 박탈당함
을사오적 :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을사늑약 후 매국노 이완용의 변명>
"새 조약의 주지로 말하면, 독립(獨立)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帝國)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皇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중명전에 전시된 을사늑약문서
<을사늑약의 내용>
조약은 전문과 5개 조항, 결문,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특명전권공사 하야시의 서명으로 되어 있다. 전문에는 ‘한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의 공통의 이해를 위해 한국이 부강해질 때까지’라는 형식상의 명목과 조건이 붙어 있다.
1. 일본국 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을 경유하여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대표자 및 영사가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인과 이익을 보호한다.
2.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고 한국정부는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3.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제의 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어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고 한국 황제를 친히 만날 권리를 갖고, 일본국정부는 한국의 각 개항장과 필요한 지역에 이사관을 둘 권리를 갖고,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에 종래 재한국일본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협약의 실행에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맡는다.
4. 일본국과 한국 사이의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 효력이 계속된다.
5.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 위키백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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