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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 노무현 대통령의 위험한 신념

baejjaera 2006. 4. 12. 15:10

아래글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www.pressian.com)에서 퍼온 글이며, 저작권은 프레시안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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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위험한 신념 
김민웅의 세상읽기 〈223〉
2006-04-12 오후 2:44:25

 

 

개인이나 국가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협력 또는 공조를 해나가면서 힘을 길러가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혼자서 전부 다 해보겠다는 것은 기특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 개인의 제한된 역량 안에서 현실을 감당하겠다는 것이어서 어렵기도 하거니와, 폐쇄적인 경향을 낳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협력하는 것이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더더욱 안 될 말일 것입니다. 그건 협력의 진정한 목표를 상실해버리거나 또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중심, 즉 주체적인 견지를 바로 세우는 것은 그래서 모든 것의 출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협력이라는 틀은 상대에게 지배당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게 됩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동학농민전쟁은 주체적 변화의 계기는 갖고 있었으나 그것이 기존질서의 근본을 혁파하는 쪽으로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고, 외세에 기댄 조정의 주체성 상실로 다음 단계의 발전이 봉쇄되고 말았습니다.
 
  김옥균이 중심이 된 갑신정변의 경우에는, 내부의 역량을 다지고 그에 기초한 협력이 아닌, 일본의 지원에 과도하게 기대를 걸고 외세의 야욕을 경계하지 못했던 방식이었기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김옥균은, 우리보다 좀더 앞서 나간 나라와 손을 잡고 충격적인 변화를 시도해보면 나라가 발전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내부적인 준비도 그렇고 외세의 지배전략에도 치밀한 대응을 하지 못해 비운의 풍운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기이하게도, 동학의 지도부 가운데 일부는 〈일진회〉를 만들어 일본과 손을 잡고 나가면 아시아의 공생과 국운의 개척을 바랄 수 있다고 일본에 투항을 선도했습니다. 한때 반외세를 외쳤던 자들의 변신이 경악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일진회가 드러내놓고 투항하자, 또는 식민지가 되자고 부르짖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큰 나라, 힘센 나라, 선진국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우리에게도 득이 된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입니다.
 
  동학의 실패와 개화파의 좌절은 이들 일진회 간부들에게 "이제 다른 도리가 없다,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지가 되느니 차라리 일본에 협력하여 새롭게 살 길을 찾자"고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로에 선 조국의 앞날에 대한 나름의 충정이라고 봐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매판의 논리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논리는 과거사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좌표를 잘못 읽고 상대를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역사관을 신조로 삼으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권장하고 있다는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배기찬 청와대 비서관의 책은 일본이 영국과 손을 잡고 근대사의 격동을 헤쳐 나갔듯이, 우리도 지금 미국과 손을 잡고 위기를 돌파하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 저자의 진지한 열정도 보이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진심도 읽힙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변화과정에 대한 이해와, 특히 미국의 생각을 읽고 그 능력에 대처하는 바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각 시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 없이 단순한 유형론에 근거한 전략은, 전략적 오류를 낳기 마련입니다. 여전히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이런 식의 인식은 내적 준비 없는 협력이 결국 식민지화의 심화로 나아갔던 역사적 전철을 다시 한번 밟자는 얘기나 다름없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친일, 친미. 친중, 친러의 헷갈림 속에서 망국의 길로 달려가고 있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대외적 행보가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바 큽니다. 깊은 지식없이, 그리고 미국에 대한 이해가 빈약한 상태에서 확신이 되어버리는 대통령의 생각이 정책적 원칙이 될 때, 나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서 과거 김영삼 정권 때의 OECD 가입에서처럼 선진국 대열로 진입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OECD 가입은 준비되지 않은 국가적 처신에 따라 금융시장의 개방이 가져온 외환위기로 국가를 존망의 기로에 몰아넣었습니다.
 
  이제 한-미 FTA는 협상과 협력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지배체제에 흡수되어가는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OECD 가입 때와는 정도가 다른 재앙적 사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미국과 상대해서 나라의 장기적 이익을 확보하는 능력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비리나 스크린 쿼터를 '알아서 기어' 바친 것이나, 풍요한 농지를 깔아뭉개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문제 하나만 봐도 정부의 무능력 또는 국가관의 부재에 대한 증거는 분명합니다.
 
  협상과 협력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대미 종속이 심화 내지는 전면화 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 산업구조의 장기적 위축과 침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위협당하는 사태로 어이지게 됩니다. 결국 이 나라는 미국의 자본, 군사력 그리고 문화 패권, 그리고 이들과 '협력'하는 자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강한 자와 손을 잡을 때 그것은 상대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는 준비와 장치가 있는 경우에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 정녕, 그런 준비와 자신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섣부른 신념이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김민웅/프레시안 편집위원 

 

 

*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