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미디어몹(www.mediamob.co.kr)에서 선재동자님이 쓴 글을 퍼온 것입니다.
원문 보기 http://www.mediamob.co.kr/augustus/Blog.aspx?ID=20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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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선재동자. 지금까지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이다.
인류멸망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3년 전인 지난 2008년 4월,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별다른 검역 절차도 없이 광우병으로 범벅이 된 미국산 쇠고기를 무제한, 그리고 무조건 수입하기로 결정한 직후였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급하게 서둘러서 미국측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굴욕적인 졸속 합의에 대해 국내 여론이 들끓자,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응수했지만, 문제는 단순히 일반 서민 가정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느냐 사먹지 않느냐라는 '개인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 논리로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스테이크 전문점, 고깃집, 갈비 전문점 등은 물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반 음식점 메뉴에 쇠고기, 내장, 뼈가 재료로 사용되지 않는 음식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들 음식점들이 소비자들의 안전과 국민보건 그리고 공공복리의 대의를 위해 각자 막심한 손해를 봐가며 저렴한 미국산 쇠고기 대신 비교적 안전하지만 엄청나게 비싼 국내산 청정 한우만을 고집할 리가 없었다.
밥장사도 결국 이윤을 남기기 위한 생계수단일 뿐.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가장 저렴하고 물량 공급이 원활한 쇠고기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값싸고 육질이 비교적 괜찮은 미국산 쇠고기가 이들로써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
일단 한국의 쇠고기 시장이 완전개방 되자, 미국은 당시 미국 국내시장과 일본 시장에 그 동안 도저히 내다 팔 수 없었던 최하품질의 묵은 쇠고기들을 한국시장에 한꺼번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꽃다운 20대 한국 여성들이었다.
당시 20,30대 한국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매일 일수 찍듯 반드시 들르는 곳이 두 군데 있었으니, 그 하나는 '별다방'이요, 또 하나는 사진찍기 명소인 아웃브레이크(outbreak)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그 끔찍한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광우병으로 범벅이 된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서로 브이(V)자를 만들어가며 요래조래 열심히 사진을 찍던 20대 꽃다운 처자들의 눈이 갑자기 획~ 돌아가더니 하나같이 클레오파트라 단발머리에 커다란 꽃을 하나씩 달고 거리로 뛰쳐나와 "냐하하~, 냐하하~" 웃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거의 같은 시각, 저가, 저질의 쇠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햄버거 체인, 그리고 서민 가족들이 벼르다 벼르다 주말에나 한번씩 찾아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던 아이들과 그 가족들마저 한꺼번에 거리로 뛰쳐나와 머리에 꽃을 달고 "냐하하~, 냐하하~" 웃어대기 시작했다.
쇠고기, 내장, 뼈를 재료로 사용하는 전국 거의 모든 음식점에서 한끼의 식사를, 혹은 친구들과의 한잔을 나누던 서민들 역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미친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간혹 지붕 위에 걸터앉아 "아��~"을 외치는 자들도 있었다.
광우병은 그렇게 전국 음식점, 각 가정, 군부대 등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고, 거리에는 온갖 흉흉한 괴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모 초등학교에서는 급식 시간 직후 아이들이 갑자기 미친소 영어로 대화를 나누더라, 어떤 서민 가정에서 부모님 제사상에 쇠고기 요리를 올려놓았는데, 잠시 뒤 병풍 뒤에서 "아��~"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더라, 등등...
일반 서민들이야 미친소가 되든 말든, 대한민국 1% 내각이 저품질 미국산 쇠고기 수입시장 완전개방을 '실용외교'의 측면에서 그토록 쉽게 밀어붙인 이유는 이들이 생각하기에 자신들은 처음부터 싸구려 저품질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을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그 위험으로부터 절대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일반 서민들처럼 시장에서 쇠고기를 직접 사서 먹을 일이 없었다.
이들은 값비싼 청정 한우를 개별적으로 주문해 먹는 시스템에 익숙해 있었고, 일부는 그 금액이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도 비싸다는 일본산 고급 청정우만 수입해 먹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절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도 한가지 생각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중간상인들이 그 동안 몰래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국내산 청정 한우나 일본산 청정우로 속여 이들에게 공급해왔었다는 사실이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대한민국 1%들마저 광우병에 걸려 미친소가 되어 온종일 "냐하하~, 냐하하~" 거리며 돌아다니게 되자, 대한민국의 모든 행정은 그 자리에서 마비가 되어버렸다.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광우병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하게도 내가 '웰빙음식'으로 주목을 받던 사찰음식을 위주로 한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90%가 광우병으로 사망하고, 살아남은 10% 중 9할는 온종일 "아��~" 거리거나 미친소 영어만을 중얼거리는 '미친소'가 되었다.
나머지 1할의 생존자들은 고립된 채 자살하거나, 거리의 미친소들에게 붙잡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 3년 동안, 나 이외에는 정상적인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 동안 나는 해가 뜨면 텅 빈 도시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주워오거나, 도시 곳곳의 공터에 일궈온 채소와 과일 등을 돌보고,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은 콩 단백질과 야채 등에서 추출한 화학물질을 통해 미친소들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또한 매일 "만일 아직도 미친소가 되지 않은 생존자가 있다면, 정오에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만나자"는 내용이 녹음된 방송을 내보내며 나 이외의 생존자가 존재하기를 간절히 소망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과 사내아이가 나의 방송을 듣고 정말로 찾아와 놀라운 사실을 내게 말해주었다.
그들에 의하면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로 숨어든 소수의 채식주의자들이 스님들과 함께 살아남아 곳곳에서 절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집단 거주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에 대규모의 생존자 캠프가 있고, 그들도 그리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 합천 해인사로 떠나기로 한 전날 밤, 숨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미친소들이 한꺼번에 습격해왔다.
긴박한 순간, 나는 여자와 아이를 탈출시키고 시간을 끌기 위해 뒤에 혼자 남아 미친소들을 기다렸다.
광우병으로 범벅이 된 미국산 쇠고기만 먹어서 날고기 비린내를 풍기는 미친소들이 하나, 둘 내게로 다가왔다. 여자와 아이가 안전하게 탈출한 것을 확인한 나는 미친소들이 모두 지하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지난 3년간 묵혀두었던 청국장 창고를 터뜨려버렸다.
효과는 대단했다. 미친소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몸에 좋은 청국장이었던 것이다.
모진 고생 끝에 대규모 생존자 캠프가 있는 해인사에 도착한 우리는 나머지 생존자들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주고, 곧 청국장 대량생산에 돌입, 남아있던 미친소들을 모두 편안하게 잠들게 해주었다.
그들을 구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광우병은 한번 걸리면 되돌릴 수도, 치료할 방법도 전혀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이후 전통사찰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깨끗하고 건강한 채식위주의 식생활을 이어나갔다.
가끔씩 우리는 3년 전, 행정적 편의와 정치적 이유로 아무런 대책이나 장기적인 연구도 없이 그저 불도저식으로 갑자기 밀어붙인 단 하나의 결정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인류 대 재앙을 초래한 것을 떠올리며 몸서리치곤 한다.
나는 그 이후로도 '미친소 원년' 이전 우리 인류가 섭취하던 육류 단백질과 영양소를 대체할 더 우수한 식물성 먹거리 연구에 전념하며 전통사찰음식 보급과 더불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급하게 밀어붙인 극히 사소해 보이는 정책 하나가 끔찍한 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살아있는 교훈을 널리 설파하는데 나의 일생을 바쳤다.
그 결과, 인류는 더 이상 광우병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고, 이후 형성된 정부 지도자들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거나, 결정을 할 경우,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완벽한 대책과 대안 없이 정부 지도자 혼자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일 수 없도록 보장하는 '선재동자법'을 제정해 시행하게 되었다.
나는 전설이다.
ⓒ 선재동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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