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여기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한미FTA 8차협상 첫날인 8일, 협상장인 하얏트 호텔에서 길을 잃어 협상단이 일하고 있는 방으로 잘못 들어선 기자를 관계자들은 질색을 하며 쫓아냈다.
3년간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수북이 쌓인 협상 서류들. 그들은 이번 8차협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진행시키고 있는 중일까?
협상 개막일인 8일부터 협상장 안팎에서는 "졸속 협상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반 농담조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막판이 되자 협상을 빨리 타결시키려고 이것 저것 마구마구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단이 3월 말이라는 시한을 맞추기 위해 방대한 협상을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는지는 17개나 되는 협상 분과들이 첫날부터 속속 타결되어 나가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8차에서 타결 분과 속출할 듯 첫날 '경쟁' 분과가 한미FTA 협상 시작 이래 최초로 타결된 데 이어, 둘째날인 9일에도 통관과 노동, 환경, 전자상거래, 정부조달 등 이미 의견 접근이 많이 이루어진 분과들을 중심으로 속속 '타결' 소식이 들려올 분위기다.
8일 기자회견에서 경쟁 분과의 타결 소식을 자랑스레 전한 김종훈 수석대표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모든 쟁점을 타결한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며 "기간 내 무사 타결을 조심스레 낙관한다"고 말했다.
이 '낙관'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협상장에서는 '잘 안되는' 분과의 협상단을 수석대표가 직접 불러 물리적으로 타결시키는 '끝장 협상'이 치열하게 진행중이다.
김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2+2' 협상이라고 명명한 이 방식은 양측 수석대표 두 사람과 역시 양측의 분과장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협상의 남은 쟁점들을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무조건 타결'이라는 목표를 걸고 내용과 무관하게 무조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소명의식' 운운하는 김 대표의 말에서는 일종의 '기세'마저 느껴진다.
협상단은 이번 8차협상에서 "모든 쟁점을 타결시키겠다"는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지난번 워싱턴 고위급 회담을 결렬시켰던 쌀·쇠고기 등을 포함한 농업 분야, 미국이 여전히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개성공단, 양국의 첨예한 이해가 맞물린 자동차 등은 8차협상 이후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지난 일년동안의 '난항', '먹구름'은 모두 쇼였단 말인가? 일년에 걸친 지난 협상 기간동안 늘 '난항' 아니면 '먹구름' 일색이었던 한미FTA 협상이 어쩌면 이리도 일사천리로 타결될 수가 있는 것일까?
지난 일년간 매번 '어렵다'는 협상단의 우는 소리만 들어야했던 국민들은 배신감마저 느낄 법하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TV 카메라 앞의 '쇼'가 아니고서야 갑자기 모든 분과의 진도가 이렇게 빨라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종훈 대표가 TV 카메라 앞에서 내뱉은 말들은 사실 모두 협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협상이 잘되느냐 못되느냐, 어떻게 진행되느냐를 결정해온 것은 모두 정치적인 이유였다.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질질 끌어온 한미FTA 협상은 이제 오직 한가지 이유, '3월말까지 한미FTA를 반드시 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 때문에 갑자기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간내 타결'이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그동안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보며 버텨왔던 우리측의 '요구'들이 대부분 미련없이 포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농담이지만 협상단 관계자의 입에서 "졸속 협상이 아주 잘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안봐도 비디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