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원정시위단이 13일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미원정시위단 활동'에 대한 경과보고와 함께 정부의 굴욕적인 협상태도와 결과를 규탄했다.
이 날 회견을 통해 공개한 방미원정시위단의 가장 큰 활동 성과는 향후 한미 FTA 협상이 한국만의 단독행동이 아닌
미국과 연대한 양국 민중의 힘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방미원정시위단이
현지에서 본 한국정부의 몰지각한 외교관행이 낱낱이 폭로됨으로써 향후 협상 정보를 둘러싼 정보공개의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것임을 예견하는
자리였다.
방미원정시위단이 남긴 것, "한미FTA는 제2의 NAFTA가 될
것이다" 6월 3일부터 9일까지 일주일가량 방미원정시위단이 진행한 행사는 대략
20개이상. 하루 평균 3개 이상의 행사를 쉬지 않고 계속 벌이며 한미FTA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는 얘기다.
기자회견, 집회, 문화 행사,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인들과 함게 한 방미원정시위단은 미국내 분위기를 전하며
상기된 모습이었다.
"미국인들은 한미FTA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미FTA가 제 2의 NAFTA가 될 것이라고 하자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미국인들이 FTA에 갖고 있는 반감에 놀랐습니다. 그들 역시 초국적
자본과 권력자들을 위한 FTA의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방미원정시위단은 한미FTA에
대한 노동자 공동 성명서,한미FTA 1차 본협상에 즈음한 한미 양국 국회의원 공동 발표문, 한미FTA 반대를 위한 양국 농민단체 공동합의문을 내
옴으로써 향후 반FTA 투쟁을 위한 양국 민중의 연대를 공고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7월중 서울에서 개최될 FTA 본협상 때에는 미국 국회의원들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의 "오바 행동"에 미국 경찰도 어리둥절
방미원정시위단을 방해한 것은 역시 한국 정부였다.
한국
언론의 "반테러법 적용" 보도와 달리 미국 경찰은 전혀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 경찰은 "평화로운 집회 보장"을 위해 30분씩이나
친절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애초에 모든 행사가 미국에서 허가된 것이었기에 5개부처
장관이 성명을 낸 것은 미국 현지 민중들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방미원정단 시위를 앞두고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현지에서 반테러법을 적용할 가능성을 검토중"이라고 했던 것은 완전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에 원정시위단 관계자는 "우리가 듣기로는 그 외교소식통이
국가정보원 소속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FTA 협상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생각됐던 의료와 교육분야는 정부 측 주장과 달리 전혀 논의된 바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방미원정시위단의 분노를 샀다.
방미원정시위단은 스크린쿼터 축소, 소고기 수입등 FTA협상전에 미국이 제시한 4대
선결과제에 대해 미국협상단을 만나 선결과제에 대한 한국 민중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자 미국 협상단측 관계자는 "한국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결정을 지지하고 환영할
뿐이다"고 답해 방미원정시위단을 아연실색케 하기도 했다.
방미원정시위단은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미국 측에 과도한 액션을 취하고 있다. 한국 정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며, 분노를 넘어 슬픈 생각마저 든다"며 굴욕적인
한국정부의 외교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오종렬 단장 "재미동포들에
감사" 방미원정시위단 오종렬 단장은 "미국 정부의 비자거부, 한국 정부의 온갖
방해를 뚫고 미국 민중과 더불어 한미FTA로 인한 양국 민중의 삶이 파탄나는 과정을 집회와 시위를 통해 알려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종렬 단장은 "재미동포분들이 단순히 도움을 주는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분들이 이 모든 투쟁을 솔선하여 이끌었으며 과히 공을 그분들에게 돌린다"며 현지에서 재미동포들이 보여준 투쟁에 깊은 감사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 현지에서 재미동포들은 비행기를 타고 집회에 참석할 만큼 열성을 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길 안내에서부터 사회 각 분야의 단체,인사들과 원정시위단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FTA 반대투쟁의 목적과 이해를 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원정투쟁을 통해 한국 민중은 칸쿤, 홍콩, 칸느에 이어
워싱턴까지 그 위상을 떨치며 반세계화 투쟁의 선봉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