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시각까지는 아직 1시간이나 남은 오전 10시(4월13일)께 전화가 걸려왔다. “딴 데 일이 일찍 끝나 지금 현관 앞에 도착해 있는데 신분증이 없어 못 올라가고 있다”는 ‘구조 요청’이었다. 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발언에 따른 파장의 충격에서 좀 벗어난 것일까. 커다란 검정색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태인(47)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얼굴은 며칠 전 다른 일로 만났을 때보다는 밝아진 듯했다. 인터뷰 장소인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얼굴이 좀 좋아진 것 같다”고 했더니 “밤을 꼬박 새워 졸려 죽겠는데?”라며 엷게 웃었다.
드라이브 걸지 말라 조언했으나…
인터뷰 전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파열음이 빚어진 출발점과 경위, 또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참모’로서 대통령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걸 감수하고 한-미FTA 추진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선 이유와 배경이었다. 정 전 비서관은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과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들과 한 인터뷰에서 “한-미 FTA 추진은 임기 안에 업적을 남기려는 노 대통령의 조급증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으며, 청와대 쪽에 일부 사과의 뜻을 밝힌 뒤에도 FTA 추진 방식의 졸속성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 FTA와 관련해 제일 먼저 인터뷰한 곳은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였는데,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그 인터뷰는 3월27일에 있었고, 인터뷰 요청은 (그에 앞서) 한 달 전 쯤에 있었다. 2월26일엔가 (한-미 FTA와 관련한 청와대 모임에서) 대통령을 만났을 즈음이었다. 그러고서 한 달을 기다린 거지.” 2월26일이면 한-미 두 나라 정부가 FTA 협상 개시(2월3일)를 선언한 한참 뒤다.
“당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너무 강하게 드라이브(강력한 FTA 추진)하면 국책연구소나 각 부처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자꾸 올려보내 호도할 가능성이 있으니, 한 달 동안은 드라이브를 거두고 신중한 중립적 태도로 추진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대통령이 그런 뜻을 표명해주기를 기다렸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이 (한-미 FTA 추진의 문제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인터뷰 요청이 있었고, 이에 응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CBS 인터뷰는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음에도 인터넷 매체 ‘레디앙’ ‘오마이뉴스’에 ‘386 정치인의 무능’이나 ‘재경부-삼성그룹의 유착’ 같은 비본질적인 발언이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파열음이 커졌다는 게 정 전 비서관의 설명이다.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한-미 FTA 자체보다는 추진 방식의 졸속성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그럼에도 왜 지금 시점에서 이런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 분란을 일으키느냐는 마뜩잖은 시각도 없지 않다. 어쨌든 한때 모셨던 대통령한테 누가 되는 일 아니냐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왜 수난을 자초하는가 하는 동정론도 있는 듯하다. 글 쓰고 책 내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왜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섰을까 하는…(정 전 비서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유학을 다녀왔으며, 경제 평론가와 방송 진행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유시민, 친구로서 전화했다”
“나에 대한 나의 처벌, 가차 없는 처벌이다.” 자신에 대한 처벌이라니, 이는 대체 또 무슨 뜻일까? “대통령의 경제 참모였는데, 대통령이 내 생각과 반대로 간 건 분명히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고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미 FTA가 지금같이 가는 것에 (나름대로)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FTA가 제대로 가도록 하는 것, 다시 ‘동북아중심 구상’(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협조를 통한 경제 공동체를 지향하는)이 살아나게 하는 게 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 전 비서관은 그 때문에 분란이 벌어졌지만, 일정한 성과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측근 참모가 얘기해서 언론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상당히 반응을 보였고, 그래서 한-미 FTA(추진 방식)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계기는 됐다고 생각한다. 얘기가 거칠 게 나간 것은 인터넷 매체의 속성을 잘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역사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고도 했다. “지금 같은 FTA 추진은 노 대통령이 실패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거다. 분명히 그렇게 보이는데 반대를 하지 않으면 그건 참모의 태도가 아니다. (청와대) 안에 남아 있었더라도 반대했을 것이다. (청와대) 밖에 있다고 해서 실패의 길로 가고 있는 걸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청와대에 남아 있던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한-일 FTA가 이슈였고, 한-미 FTA는 중·장기 추진 과제로 잡혀 있다가 갑자기 빠르게 진행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한 정부 쪽 설명은 정 전 비서관과 달라 논란으로 남아 있다.
-논란이 된 뒤 청와대 쪽이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한테서 전화를 받았는가? (유시민 장관은 정 전 비서관의 절친한 친구다.)
“시민이는 친구로서 전화했고,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연락 온 건 없다.”
-유 장관은 어떤 말을 하던가?
“인터뷰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글로 표현하는 게 효과적이니 글을 쓰라고 하더라. (웃음)
-한-미 FTA에 대한 유 장관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유 장관과) 관련되는 분야인 보건·의료 쪽에 대한 걱정을 했더니 ‘강제지정제’(의료보험증이 있으면 어느 병원에라도 갈 수 있도록 하는) 같은 건 확실히 지킨다고 했다. 의약값 재조정도 그렇게 호락호락 미국에 안 내준다고 했다. 우리나라 제약업체들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잘 모르겠다. 부처들의 의견이 얼마나 외교통상부에서 취합돼 협상에 반영될지. 관계장관회의를 2주에 한 번씩 한다고 하니 강도 높게 취합은 하는 것 같은데….”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재직 당시 한-일 FTA 체결을 앞장서 준비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한-미 FTA를 맹렬히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다. 왜 한-중 FTA나 한-일 FTA은 되고, 한-미 FTA는 안 된다는 것일까? 그의 본뜻이 잘못 전달된 것일까?
외부 쇼크에 의한 개혁, 타당한가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미국의 TPA(미 의회가 행정부에 위임한 통상신속협상 권한)법 때문에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3월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협상을 하게 되면 우리에게 대단히 불리한 협상이 된다. 그런 졸속성에 반대하는 것이지,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 나라별 차이도 있다고 정 전 차장은 설명했다.
“한-일 FTA는 우리에게 큰 부담이 없다. 농산물의 경우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도 우리나라도 농업 부문에서는 부담이 없다. 부담이 되는 건 기계 부품 분야다. 우리가 일본에 너무나 의존적이다. 이 부분을 좀더 보완해서 부품 산업을 활성화할 대책을 제대로 세우면 크게 염려할 게 없다. 한-중 FTA 역시 농산물이 문제인데, 중국이 제조업에 높은 관세를 물리고 있다. 따라서 한-중 FTA는 높은 수준의 FTA가 될 수 없고 우리 농산물을 보호할 여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가 우리에게 가장 불리하다. 서비스, 제조업, 농업 모두 경쟁력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과정의 졸속성만 교정되면 한-미 FTA를 추진해도 된다는 것인가?
“세계화는 불가역적인 흐름이다. 다만, 어떤 세계화냐가 문제다. 이미 1992~93년께 그런 글을 썼다. 어차피 세계화는 되는데, 현실화되는 방법은 지역주의 형태일 것이다. 그게 노 대통령의 ‘동북아중심 구상’과 거의 유사해서 지지한 것이다. 지역 내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의 FTA가 먼저 추진되고, 역내 경제 통합이 강화된 뒤 역외와 FTA를 강화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헤게모니(주도권)를 저지하려고 한다. 그 부분을 이용하면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의 협상은 미국에 매달리는 것처럼 한다. 또 거의 준비돼 있지 않고, 짧은 시간 내에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에 그렇게 많은 문제점이 내포돼 있는데도 노 대통령이 이를 강력히 추진하려는 속내에 대해선 이미 다른 매체들의 인터뷰에서도 나왔지만, 한 번 더 들어보기로 했다.
“대통령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산업적인 측면에서 중국이 쫓아온다는 ‘중국위협론’에 근거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중국에 쫓기고 있으니 서비스 산업 쪽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비스 분야가 가장 발전한 곳은 미국이니 FTA를 통해 미국의 서비스업을 받아들이고 한국의 서비스 부문을 발전시킨다는 거다. 두 번째는 개혁이다. 대통령은 개혁에 관해 의지가 있는 분이다. 초기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개혁’을 주로 생각했다. 노동자·농민·시민들이 참여해 그 힘으로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주로 생각했는데, 몇 개 사안에서 조직적 이기주의에 부딪혀 잘 안 되자 상당히 실망하는 단계를 거친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어 사회적 합의 개혁은 포기한다. 그래서 나온 게 ‘대연정’이다. 위에서 보수 진영을 끌어안아 합의된 정책을 갖고 중간 수준으로라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건 한나라당이 받지 않아 또 좌절했다. 그 다음 단계의 개혁이란 대통령이 얘기한 대로 ‘외부 쇼크(충격)에 의한 개혁’이다. 이건 이미 우리가 경험했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시장을 개방해 외부 쇼크를 받았고, 국제통화기금(IMF)식 신자유주의 개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재벌에 대한 규제, 은행 건전성 강화는 이뤄졌으나 대단히 큰 고통을 겪었고 아직까지 여진이 남아 있다. 따라서 외부 쇼크에 의한 개혁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 (웃으며) 인터넷에서도 이렇게 얘기했어야 하는 건데….”
대통령의 뜻 아니면 될 수 없는 일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서비스 분야의 질은 높아진다는 기대를 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의료, 교육, 법률 서비스 같은 분야에서….
“그런 사업 서비스의 특징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면허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공급이 제한돼 있고 가격이 높다고 느낀다. 그것에 대한 불만이다. 공급 증가로 해결한다는 것이고.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병원이나 법률회사가 들어와 우리나라의 병원이나 법률회사를 인수·합병하는 경우 대규모 해고가 일어날 것이다.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업이 잘돼 장기적으로 고용이 늘 수도 있겠지만 일단 단기적으로는 고용이 줄어들고 인수·합병된 법률회사 또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값은 올라갈 거다. 이에 따라 서비스의 양극화가 나타난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심할 것이다. 병원을 영리법인화하면 현재의 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진다.”
△ 졸속으로
추진되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한-미 FTA 반대 집회 준비
모습. |
-한-미 FTA 추진의 핵심 주역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구상 아래 김 본부장이 움직이는 것인가? 아니면 김 본부장이 대통령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 것인가?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에 의한 개혁이 실패해 좌절한 상태에서 외부 쇼크에 의한 개혁을 생각하는 중에 우연히도 그 시점에 (김 본부장이)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와 갑자기 빨리 진행됐다고 본다. 누가 누굴 지시한 것이라기보다 김 본부장은 사명감을 갖고 뛴 것이고 대통령은 나름대로 개혁의 다른 방식을 찾다가 만났던 듯하다. 그게 지난해 9~10월께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네 가지 핵심 과제(스크린쿼터 축소 등)를 3개월 만에 다 들어줬다. 이건 대통령 뜻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다.”
-참여정부에서 한-미 FTA를 그래도 계속 강하게 추진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혼자서 이러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일단은 다음 단계에서 국회가 속도를 조절하고, 또 내용에 대한 감시와 통제 기능을 해야 한다. 또 시민사회 단체, 언론이 국민 의견을 수렴해서 FTA 협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걸 하는 데 필요하다면 뭐든지 할 것이다. 어떤 단체에서 부르면 가서 얘기는 하겠지만, 특정 단체에 들어가서 (무슨 역할을)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태에서 보완하는 방법은 가장 민주적으로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그건 속도 조절과 내용의 충실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 전 비서관은 덧붙여 최악의 경우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의 경우를 한국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에서 안보동맹에 이어 경제동맹이란 수사를 썼다. 이는 한·미·일 ‘남방 3각동맹’의 강화를 뜻하는 발언이고, 중국·러시아·북한의 ‘북방 3각동맹’의 강화를 촉진한다. 그렇게 되면 남북 관계 개선, 통일에 기울여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냉전으로, 이제 아시아 패권 전략에 의해 남북이 갈라지는 최악의 사태로 갈 수 있다. 한-미 FTA는 그런 최악의 사태로 가는 데 일조할 소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기왕 시작된 마당이니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국가 신인도 문제가 걸려 있다는….
“내부 개혁이 선행되면 미국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데, 그런 준비가 없는 상태에선 외부 쇼크가 대단한 고통과 후유증을 자아낼 수 있다. 졸속으로 10개월 안에 하는 경우 우리 경제가 상당 기간 침체에 빠질 수 있다. (FTA 체결에 따른) 새 제도에 적응을 못하면 사람들이 행동을 안 한다. 투자와 소비가 멈춰 침체가 지속될 수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따라서 “정부가 (한-미 FTA 추진의) 경과와 준비 상태를 솔직히 얘기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 이전에 전문적 연구를 통해 그 결과로 내부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2단계 준비를 빨리 해야지, ‘우릴 믿고 기다려라’는 식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국민들이 준비를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정책 방향과 국민들에 대한 태도는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미 FTA 추진의) 속도 조절은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 청와대에서 그런 분위기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개혁을 이른 시간 안에 이루고 싶어하는 것이지, 반민주적인 생각으로 추진하는 건 아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국민과의 대화’ ‘담화문’ 형태로 설득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속도 조절과 내용에 대한 얘기가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최근 들어 ‘꼭 TPA법 기간 안에 해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등 유보적인 얘기가 나오는 게 졸속성에 대한 반대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반대)이 없었으면 더 빨리 진행됐을 텐데 유보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시민운동 진영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얘기하는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두어 시간에 걸친 인터뷰 뒤 잠시 한담을 나누던 중 밖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던 정 전 비서관의 표정이 조금 더 밝아지는 듯했다. 전화를 받던 그는 “누가 지갑을 찾아 돌려준다는 전화”라며 웃었다. 그렇게 ‘운수 나쁜 아침’이 ‘운수 좋은 오후’로 바뀌듯 한-미 FTA를 둘러싼 대립 전선에도 변화가 있을까?
김현종 본부장의 침묵
<한겨레21>은 애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대담 형식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사안을
다루려고 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 인터뷰는 이미 다른 언론 매체들이 다룬 탓도 있었지만, 워낙 많은 쟁점을 안고 있는 사안이어서 개별적인
인터뷰보다는 대담 형식이 적절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 관련 발언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고, 김 본부장은 FTA 협상을 주도하는 인물이어서 대담자로
적격이었다.
지난 4월12일부터 본격적으로 접촉한 결과 정 전 비서관은 김 본부장의 참석을 전제로 대담 요청을 받아들인 반면, 김 본부장 쪽은
묵묵부답이다가 밤늦게 보좌관을 통해 불가 통보를 해왔다. 이에 두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터뷰한 뒤 지상 대담으로 재구성하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김
본부장 쪽의 인터뷰 거절로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한겨레21>은 이에 앞서 지난 3월 초부터 김 본부장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해두고 있던 터였다. 한-미 FTA 협상에서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핵심 주역이란 말을 청와대 쪽에서 일찌감치 듣고 있었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 FTA가 그렇게
중요하면 김 본부장 같은 책임자가 공론의 장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이 수석이 “(자신이)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을 한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김 본부장 쪽과 전화로 시도한 수차례의 인터뷰 시도는 끝내 무산됐다. 김 본부장과 직접 연결된 통화는 딱 한 번이었는데,
그나마 “회의 중”이라는 짤막한 답변만 남긴 채 끊겼다. 이백만 수석에게 ‘인터뷰 주선 약속을 지켜라’고 했더니 “김 본부장은 전투에 나설
장수여서 협상 전략을 노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이유를 댔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공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한-미 FTA는 걸리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매우 다양한 쟁점과
이해관계를 포괄하고 있어 어떤 사안보다 공론이 필요한 이슈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정부 쪽은 대통령의 원칙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튀어나오고 국민들의 불신은 소복소복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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