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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며, 저작권은 프레시안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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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협상, 일단 끌고 볼 일이다"
<시론> '동북아균형자' 등 기존 국정목표와 크게 어긋나
2006-05-10 오전 11:43:55
한미FTA(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란이 가열되면서 내 나름으로 도달한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단은 협상을 최대한으로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결을 서둘렀을 때 예상되는 결과가 너무나 끔찍한 반면, 협상을 늦추는 데 성공한다면 엄청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과 '경제통합'에 준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을 때 야기될 온갖 경제적 불이익과 사회적 혼란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모두 적중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학계와 전문가집단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는데도 정부측의 응답은 도무지 국가대사를
제대로 준비해온 사람들답지가 않다. 허황된 계수를 내놓았다가, 자신들의 협상능력이나 국익준수 의지를 무조건 믿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게다가
현정부의 능력과 애국심을 가장 철저하게 냉소하던 보수언론들이 유독 이 문제에서만은 정부측의 그런 호소에 선뜻 응하는 모습이니 불신감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그사이 부각된 한가지 사실은, 한미FTA는 한국이 칠레나 싱가포르와 이미 맺은 FTA와 달리
경제적인 이해득실만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당국 스스로도 한미FTA에는 '안보적인 측면'도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정부가 제반사항을 충분히 검토하고 준비한 것 같지 않다. 하기는 면밀한 검토를 거쳐 도달한 결정이라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한미FTA의 '안보적 측면'이란 결국 양국간의 경제동맹을 통해 기존의 군사·안보동맹을 더욱 굳혀서 북측이나 중국의
위협에 더 잘 대비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노무현정부가 이런 식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단정하는
이들도 많다. 이라크파병 때부터 초기의 자주외교노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정권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 평택기지 확장강행 등 일련의
수순을 거쳐 드디어 신냉전주의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정확한 내막이야 알 길이 없지만, 나 자신은
한미FTA의 안보적 측면 역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같은 해당부서에서 일찍부터 검토된 바 없다는 정태인 전 대통령비서관의 증언을 신용하는
편이다. 실제로 정부의 대북교류협력 노선에 어떤 기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많은 사안에서처럼 이번에도 정부
최고위층에서는 미국과 FTA를 맺는다는 결정이 기존의 국정목표와 얼마나 상충하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한미FTA가 주한 미 지상군의 감축과 전시작전권의 회수 등 기존의 자주노선 추구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리라는 계산을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랬다면 이 또한 일방적인 단꿈이 아닐 수 없다. '경제통합'이라는 말을 앞에 썼지만, 미국은
FTA를 통해 상대국가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관철해왔을뿐더러 자기네 위주의 '안보적 측면'에 처음부터 큰 비중을 두어온 나라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창환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과)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설득력이 높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급부상하고 북-미관계가 좀처럼 원만하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과 군사·안보동맹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미국의 FTA 네트워크에서 배제된다면 그 자체가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다. 미국은 한미FTA
체결을 통해 노무현정부 초기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완전히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한동안 소원해진 한미관계를 보다 강화된 한미 군사·안보·경제동맹관계로
완전히 청산하려고 한다."
한국의 협상진이 미국의 이런 전략적 구상을 뒤엎고 동북아균형자 역할이나 남북의
화해협력 진전에 알맞은 만큼만의 '안보강화'를 얻어낼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 대통령과 NSC가 처음부터 그런 목표를 향해 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한미간 국력의 차이가 엄연하려니와, 정부 내 한미FTA 추진부처는 미국의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개혁이자 최고의 안보라고 믿는 인사들로 가득차 있기조차 하다.
이처럼 경제적 타격 외에도 '안보적
측면'마저 대통령 스스로가 설정한 원대한 국정목표에 어긋난다고 할 때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국의 정부가 협상개시를 선언해놓고
그대로 엎자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통산증진법(TPA) 만료시한에 맞춘 조기타결은 국제법이나 국제관례 어디에도 규정된 의무가
아니며, 일본과의 FTA보다 훨씬 파급력이 큰 한미FTA 협상을 훨씬 오래 끌며 악착같이 따지고 드는 일도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아예 엎자고 주장하는 것도 자유고 일단 끌고 보자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의 운동은 '엎자'는 강경반대파가 먼저 시동을 걸어준 덕분에 '끌자'는 신중파가 점차 합류해서 힘을 실어가는 형국이다. 나는
궁극적 발전모델과 대외전략을 놓고는 치열한 토론을 병행하되, 우선은 정부로 하여금 끌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최소목표를 중심으로 폭넓은
연합세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끌기 위해서도 엎자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물론 일리가 있지만, 엎더라도 끌다가 엎어야 명분이 서는 상황에서
'엎자' 일변도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오히려 연합세력의 폭과 입지를 좁힐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단 시간을 끌어서 TPA 시한을 넘기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전술적 승리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파국적인 협상타결을
일단 저지하는 데 성공한 한국의 시민사회는 또 한번의 폭넓은 연대운동을 경험한 주체로서 향후의 협상을 최대한으로 유리하게 추동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들 주체는 안보와 경제의 여러 문제에 대한 치열한 연마를 거쳤고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동북아평화 등에 대한 공감이 더욱 깊어진
세력이어서 한미FTA뿐 아니라 나라 안팎의 온갖 문제를 풀어가는 데 큰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미 집권 5년차에 들어선 정부는 정부대로 협상을 차분히 진행해서 다음 정권으로 넘긴다는 이성적인 자세로 돌아올 가능성이 많으며, 미국의 꾸준한
국력쇠퇴는 올해하고도 또다른 지경에 달해 있으리라 전망된다. 따라서 한미FTA를 반드시 엎어야 할 이유도 그만큼 줄어든 상황인 동시에, 결국
엎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이 설 경우에도 우리 사회는 훨씬 탄탄한 명분과 준비된 역량으로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http://weekly.changbi.com/)' 5월 9일자에 실린
것으로 창비측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백낙청/창비
편집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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