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펌] 가장 비싼 약 먹어야 할 한국

baejjaera 2009. 5. 6. 14:05

아래 기사는 경향신문(www.khan.co.kr)에서 퍼온 것입니다.
---------------------------------------------------------------------------------------------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 치료제

 

 

[이해영칼럼]가장 비싼 약 먹어야 할 한국

 


최근의 자유무역협정(FTA)에는 지적재산권 보호와 단속 강화 등의 조항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시된다. 한·미 FTA도 그렇고 한·유럽연합(EU) FTA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2, 3위를 다투는 서비스 무역 적자국이다. 그리고 적자의 대부분이 미국, EU와의 서비스 무역에서 발생하고, 그 가운데 관광 등 여행수지를 제외하고 지재권 관련 로열티 지불액이 가장 많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조항

 

특허 관련 지재권 항목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를 지닌 것이 이른바 의약품 관련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다. 현행 식약청의 의약품 허가제도에 따르면 특허에 관계없이 신청된 제네릭(복제) 의약품이 안전성, 유효성 기준에만 적합하면 시판을 허가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허가-특허 연계가 됨으로써 제네릭 개발자는 원개발자의 동의나 묵인 없이 허가를 신청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 의약품이 제네릭 의약품이라 할 때, 이 제도의 도입은 한마디로 대폭적인 약값 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초국적 제약회사의 배를 불리기 위해 우리 모두 매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제도는 당연히 일반 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제약하는 치명적 독소 조항이다. 바로 이 독성으로 인해 미국 민주당조차 2007년 5월 부시와 합의한 ‘신통상정책’에서 이를 FTA에서 폐기하기로 했고, 실제 재협상을 거쳐 파나마, 콜롬비아 FTA에서 이를 삭제했다. 하지만 당시 똑같이 재협상을 했던 한국은 여기에서 제외했다.

아마 그 이유는 우리가 미 제약회사에 약값을 더 내도 될 정도로 잘사는(?) 나라축에 끼였기 때문일 게다. 유럽 내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이탈리아·프랑스·스웨덴·벨기에 등은 이 제도의 도입을 거절했다.

 

 

그런 점에서 영국 노동당 출신 마틴 유럽의회 의원이 EU 집행위원회 통상집행위원 애시턴에게 보낸 서면질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다. 질의 요지는 허가-특허 연계가 “EC법에 저촉되고” “집행위 자신이 이 법의 도입에 반대했음에도”, 한·EU FTA 초안에 이것이 왜 포함되었는가이다. 여기에 대한 지난 3월24일자 애시턴의 답변은, “한·EU FTA를 통해 집행위가 허가-특허 연계 관련 EU 규정을 변경할 의사는 없다”. 하지만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이 이를 허용했기 때문에 EU 기업도 이로부터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틴 의원의 또 다른 질의는 자료독점권에 관한 것이다. “집행위는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 한·EU FTA 협정문 9.9.4조의 자료독점권과 결합되었을 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자료독점 특허 체계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EU의 경우, 미국과 달리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약 허가 신청 시 원개발자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 최장 11년의 독점권을 인정한다.

 

 

美 이어 EU와 FTA에도 포함

 

이는 한·미 FTA에서 인정한 5년의 2배 이상 기간이다. 요컨대 마틴 의원의 질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국 제약회사에 매년 최소 수천억원을,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더 오랫동안 EU 제약회사에 또 지불해야 한다. 무분별한 ‘동시다발적 FTA’의 결과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살았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을 먹어야 할까. 그리고 EU 측에 따질 일이다. 스스로에게 독이면 남에게도 독이지 않은가. 이윤에 눈이 멀어 스스로에게 하지 못할 짓을 상대국에 강요한다면, 그대들이 19세기 제국주의자와 무엇이 다른가. 한·EU FTA, 또 하나의 한·미 FTA가 다가온다.

 

 

<이해영|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