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리병원 허용=당연지정제 폐지' 똑같은 말
2008/06/19 11:53 by 진보제주
6월 18일 제주특별자치도 김창희 단장께서 ‘도내 병원들의 영리병원 설립 허용도 검토하겠다, 국내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의료를 산업화하자는 것이고, 당연지정제는 계속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민영화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기사를 보았다. 영리병원 허용과 당연지정제 폐지가 전혀 다른 것처럼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
국내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는 서로 다른 제도적 변화이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측면에서 보자면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두 제도 모두 동일한 경로로 건강보험 민영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 후 예상되는 민영화 경로를 살펴보자. 필자의 개인 의견 대신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위헌 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합헌 판결을 내린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당연지정제 예외 적용 의료기관을 인정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일정 비율의 의료기관에게 일반의(一般醫)로서 진료할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한다면, 의료공급시장의 자유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에 편입되기를 원할 것이고, 보다 양질의 의료행위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은 요양기관으로서의 지정에서 벗어나 일반의로서 활동하게 되리라는 점이 쉽게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보험진료는 결국 2류 진료로 전락하고, 그 결과 다수의 국민이 고액의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반진료를 선호하게 되고, 이는 중산층 이상의 건강보험의 탈퇴요구와 맞물려 자칫 의료보험체계 전반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강제지정제의 예외를 허용한다면, 의료보장체계의 원활한 기능 확보가 보장될 수 없다는 판단이 가능하고, 입법자의 이러한 예측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강제지정제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사진 - 한겨레>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건강보험제도 자체의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게 헌법재판소이 판단이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논외로 하겠다.
다음으로, 국내영리의료법인 설립 허용으로 예상되는 민영화 경로를 짚어보자. 비영리 병원도 영리를 추구하지 않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는 하나만 짚겠다. 영리병원에 대해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강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에 대해서 생산품의 범위와 가격 등등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결국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안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밖으로 나갈 것인지를 선택할 권한을 의료기관에게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건강보험제도 안에 머물러 있다가 조건이 충족되면 위헌소송 등을 통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벗어날 권리를 쉽게 갖게 될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은 당연지정제 예외병원을 인정하는 것으로, 앞서 살펴본 헌법재판소 판견문 논리와 맥이 닿는 부분이다. 당연지정제 폐지와 비교해 보면, 영리병원에게만 선택권을 준다는 것이 차이인데, 기존 병원에게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기회를 준다면 공공병원이 10%에 불과한 우리나라 형편에서 당연지정제 폐지와 별반 차이도 없다.
건강보험제도가 갖는 독점성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초기부터 쉽게 건강보험제도를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일정 수 이상의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제도를 벗어나거나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일정 수준 이상 성숙되면 건강보험제도 밖으로 빠져나갈 의료기관이 더욱 늘어나게 되어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결론은, 국내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당연지정제 폐지는 똑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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